"꼭 성사시켜야 합니다.안되면 회사가 문을 닫습니다" 자금담당 차장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지난 99년 4월 10일. 미국계 펀드 로스차일드의 부채조정기금 5백억원을 빌리기 위한 한 달 반 동안의 협상을 매듭짓는 날이었다.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 부도는 불가피했다. 외환위기는 수많은 기업을 부도로 몰고 갔다. 금호전기도 부도의 덫에서는 자유롭지 않았다. 국내 형광등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하며 많은 돈을 벌었지만 무리한 차입은 회사 자금사정을 극도로 왜곡시켰다. 당장 98년 매출이 7백84억원으로 전년보다 30%가 넘게 줄었다. 영업이익은 고작 6억8천만원. 영업이익률이 1%도 안됐다. 순손실만 1백45억원에 달했다. 돌아오는 어음을 막는데 급급했다. 단기채무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다시 말해 부도를 피하기 위해서는 2백억원이라는 목돈이 필요했다. 뭔가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했다. 당시 국내에 들어와있던 외국금융기관의 구조조정기금을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회사의 재무제표를 살펴본 외국금융기관의 첫 마디는 "No"였다. 로스차일드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로스차일드 담당자의 부인이 LCD모니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금호전기가 LCD 핵심부품인 CCFL(냉음극형광램프)를 만드는 회사라고-사실은 전혀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설득했기 때문이다. 협상은 빠르게 진행됐다. 회사가 오늘 내일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돈이었다. 변호사 비용만 2억원을 넘게 줬다. 서류를 쌓아놓고 보니 두께만 50cm가 넘었다. 잘 진행돼던 협상이 막판에 틀어졌다. 무려 1백개가 넘는 디폴트(default) 조항이 문제였다. 매년 목표한 에비타(EBITA.감가상각+영업이익)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을 포기해야한다는 독소조항까지 포함돼 있었다. IMF이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경영권을 담보로 턱없이 높게 책정된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하겠다고 약속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까딱하면 회사를 그냥 뺏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협상이란 말이 그럴 뿐 고함으로 시작해 삿대질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지만 로스차일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회사도 오늘 내일하는 상황이었다. 불리한 건 이쪽이었다. 로스차일드와의 최종 담판일.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이냐는 로스차일드의 답변 요구에 디폴트 조항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짧게 답했다. "결렬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로스차일드 담당자가 "알았다.받아들이겠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양보를 받아낸 것이다. 로스차일드는 대신 회사 상표인 "번개표"를 담보로 받아놓겠다고 했다. 회사가 부도나면 받아갈 건 상표 하나밖에 없다고 꼬리를 달았다. 대역전의 순간이었다. 이 돈으로 회사는 CCFL에 제대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지난 2000년 IT경기가 회복되면서 매출과 순익도 빠르게 늘었다. CCFL이 없어 TFT-LCD를 만들지 못할 정도였다. 회사 자금사정도 좋아졌다. 지난 6월 3일 마포사옥 매각대금 3백억원과 회사 보유자금으로 로스차일드에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상환기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경영권 시비까지 있을 뻔한 돈이었다. 만약 그 때 협상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 금호전기는 어떤 모습일까. 회사가 벼랑끝까지 몰린 그 날을 떠올리면서 경영자는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되씹곤 한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