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첫 선택-노무현] '5大 경제연구원장의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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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민.관 연구기관장들은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최우선적인 정책 과제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일을 꼽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돼야 기업들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며, 그 바탕 위에서 질 좋은 일자리 창출과 유지를 통한 국민 생활 전반의 향상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이윤호 LG경제연구원 원장,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등은 한국경제신문과의 긴급 인터뷰에서 "앞으로 5년이 한국 경제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이같이 입을 모았다.
이들은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지속적인 규제 완화 노사관계 안정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기 위한 인력개발 등의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체질 개선작업을 계속하는 한편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는 자세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 줄 것도 당부했다.
합리성에 바탕을 두지 않고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근거한 경제정책은 더 이상 안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일부는 내년 상반기에 한국 경제가 불확실한 대외여건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겪을 것이라며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부 대책을 주문했다.
갈등구조 풀어 기업환경 개선해야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은 "제조업체들이 복잡한 규제와 인력난 등을 이유로 동남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으며 앞으로 이에 따른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새 정부는 관치(官治)경제의 관행을 버리고 기업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충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우리 기업이 밖으로 빠져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상당수 외국투자자들이 한국 대신 중국쪽으로 해외 투자처를 옮겨가고 있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며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려면 노사관계 안정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특히 2004년엔 총선이 예정돼 있는데 이 때 정치논리로 노사관계가 왜곡돼서는 안된다며 새 정부가 원칙과 소신을 갖고 '법'에 기초한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장은 복잡한 갈등구조의 해소를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노사갈등뿐 아니라 빈부격차, 지역갈등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갈등구조가 동북아 비즈니스.물류 중심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만큼 이같은 장기적 불안요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은 "기업정책의 근본부터 재검토해 줄 것"을 주문했다.
좌 원장은 "김영삼 정부 이후의 기업정책에 평등을 전제로 한 인기영합적 요소가 많았던 만큼 '자율'과 '경쟁'을 기초로 한 새로운 기업정책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성장엔진 필요
치열한 국제경쟁 관계 속에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키기 위한 성장엔진의 발굴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안충영 원장은 "중국은 바짝 뒤쫓고 있고 일본은 심하게 견제하고 있는 데다 뉴라운드협상(DDA) 등을 통한 개방일정이 예정돼 있어 우리에게는 여유가 없다"며 "서비스산업을 정보통신(IT)산업과 접목시켜 고부가가치화하는 등의 성장엔진 개발작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중웅 원장은 "현 정부가 시도한 벤처육성 정책은 기대만한 성과를 못낸 것으로 평가된다"며 "경제를 이끌 주력산업을 선정하고 이에 필요한 인력을 집중 육성하는 등의 장.단기 성장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조조정의 지속적 추진
현 정부 후반기들어 다소 느슨해진 개혁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윤호 원장은 "국유 은행 민영화와 기업의 체질개선 등 기업.금융부문 구조조정에서 할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
좌승희 원장은 "과거 정부들이 포퓰리즘에 기대다보니 '노동운동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 경제자유구역법 같은 특별법 형태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구조조정도 하고 노사관계도 유도하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연착륙 대책 시급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내년 상반기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무는 "내수가 급격히 둔화된 상태에서 두자릿수 수출이 경기를 이끌고 있지만 투자가 뒤따라 주지 못하고 있다"며 "수출 위주의 '외끌이 경기'를 수출과 투자가 이끄는 '쌍끌이 경기'로 전환시켜야 5%대 잠재경제성장률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무는 이를 위해 "내년 상반기중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IT분야 제품의 수요를 늘려 기업의 투자심리를 이끌어 내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전무는 아울러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의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기 위해서는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기업연금제 도입 등을 통해 시장을 확충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