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수가…." 이회창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던 19일 오후 9시30분 한나라당 당사 10층 종합선거상황실. 개표 초반과 달리 이쯤부터 상황실은 무거운 적막감에 빠져들었다. 이 후보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10만표 이상 뒤지기 시작하자 5대의 대형TV 앞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당직자들의 표정엔 체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김덕룡 최병렬 공동 선대위 의장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고, 서청원 대표 등 다른 핵심 당직자들도 "할 말 없다"는 말만 남긴 채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이어 오후 10시께 각 방송사들이 일제히 노 후보의 '당선확정'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개표 초반만 해도 기세를 올렸다. 이날 오후 6시 정각 KBS MBC SBS 등 방송3사에서 이 후보가 1.5∼2.3% 포인트 차이로 뒤진 예측조사를 발표할 때만 해도 상황실을 가득 메운 수백명의 당직자들은 "실제 개표결과는 다를 것"이라며 내심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실제로 개표가 시작된 오후 6시30분께부터 이 후보가 2시간 가까이 노 후보를 3∼4% 포인트 차로 줄곧 앞서가자 상황실은 한껏 고무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표가 35% 정도 진행된 오후 8시40분께부터 이.노 후보간 순위가 역전되면서 열기는 식기 시작했다. 이어 개표가 진행될수록 추월 당한 선두자리를 뒤집지 못하고 계속 표차가 벌어지자 한숨소리가 늘어갔다. "현역 의원들이 하나도 안 뛰었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간간이 흘러나왔다. 당사 곳곳에서는 성급한 당직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벌써부터 선거결과가 가져올 정치권 기상도 변화를 점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