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와 오사카부 등 일본의 27개 지방자치단체가 2003년 4월부터 공동으로 공모지방채를 발행키로 합의했다. 일본의 지자체가 모두 47개인 점을 감안하면 절반을 웃도는 숫자다. 하지만 지방채 발행 자격을 갖춘 지자체는 28개에 불과해 기관투자가 등을 상대로 채권을 찍어내고 돈을 빌릴 수 있는 지자체는 1백%에 가까운 숫자가 '공동채무자'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일본 지자체들의 공동채권 발행은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네차례 채권을 함께 찍어낸 후 약 40년만의 일이다. 27개 지자체의 공동지방채는 8천억엔어치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 지자체가 내세우는 표면적 이유는 높은 신뢰도와 낮은 코스트다. 여러 지자체가 손잡고 발행하는 것이니 믿음을 줄 수 있고, 발행비용 또한 절약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 뒤에는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고민이 숨어 있다. 빚더미에 신음하는 국가 재정이다. 일본 정부의 2003년 예산안은 36조5천억엔어치의 국채를 신규발행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입버릇처럼 외쳐 왔던 '30조엔 상한'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내년뿐만이 아니다. 나라 살림을 바로 잡기 전에 추락하는 실물경제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추경예산을 편성한 탓에 올해 발행 규모도 35조엔에 이를 것이 확실한 상태다. 때문에 날개를 단 국가채무는 내년 말 6백85조엔까지 치솟게 돼있다. 채무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고이즈미정권은 지방채의 60%을 떠맡아 주던 재정투융자 규모를 내년 예산에서 12.6%나 축소했다. 지자체들로서는 돈줄이 말라붙게 된 것이다. 27개 지자체들이 시장을 상대로 채권 공동 세일즈에 나서게 된 것은, 더 이상 중앙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인 셈이다. 고령화와 낮은 출산율로 경제활동 인구가 감소일로를 걷는 일본은 세수 구멍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내년도 조세수입은 41조7천8백60억엔으로 올해보다 10.7% 줄어들게 돼 있다. 써야 할 곳은 많은데 수입은 해마다 줄어드는 옹색한 부자. 지자체 공동채권 발행에 비친 일본의 진짜 고민중 하나는 구멍난 살림살이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