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라는 같은 제목의 영화 두 편이 잇따라 영화관객들을 찾는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과 남녀주연상을 받은 미하엘 하나케 감독의 멜로 "피아니스트"(원제 La Pianiste)가 현재 서울 코아아트홀에서 상영중인데 이어 올 칸영화제 작품상(황금종려상)을 받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전쟁드라마 "피아니스트"(The Pianist)가 내년 1월1일 일반에 공개된다. 영화 마니아라면 놓치기 아까운 작품들이다. .......................................................................... 2차대전의 나치학살을 소재로 한 걸작 "쉰들리의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는 숱한 인명을 구해낸 인물 쉰들러의 영웅담이고 "인생은 아름다워"(로베르토 베니니 감독)는 어린 아들에게 살육의 참상을 감추고 싶은 부정(父情)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코미디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는 나치학살을 피해 살아 남은 한 피아니스트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 문제를 부각시킨 드라마다. 영화속 주인공 스필만(애드리언 브로디)은 작고한 유태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을 모델로 한 인물이고 연출자 로만 폴란스키 감독 역시 유태계 폴란드인으로 나치의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은 사람이다. 황폐한 전쟁 풍경과 감미로운 쇼팽의 선율이 병치되는 이 작품은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조화되는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다. 전운이 감돌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도중 폭격을 당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여기서 전쟁은 야만의 극치이며 피아니스트는 섬약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표상이다. 양자의 선명한 대립구도는 전쟁이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유태인에게 완장채우기,출입금지구역설정,유태계 노인구타,가스실 대학살로 이어지는 나치의 만행은 갈수록 심화된다. 폴란드인 동포들도 유태계 동족 스필만을 나치에 고발한다. 전장에서 인간들은 이성과 도덕을 저버린 존재다. "죽음의 열차"를 탈출한 스필만이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뒤져 먹는 광경은 "도둑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 이 영화는 전쟁이란 한계상황에 대응하는 두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스필만이 상징하는 굴종과 인내,스필만의 동생이 대변하는 저항이 그것이다. 스필만 동생과 레지스탕스 등 저항파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는 것으로 그려진다. 스필만은 창밖에 펼쳐지는 저항파의 전투에 동참하지 않고 숨어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살아 남아 예술혼을 전한다. 생명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가치중의 하나인 만큼 스필만의 생존방식을 비난할 수 없다. 레지스탕스의 저항을 주로 찬미해 온 2차대전에 관한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전쟁을 겪은 보통사람들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 나치장교에게 발각된 스필만이 목숨을 걸고 "쇼팽의 발라드 No1,G단조"를 연주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빵과 장미""씬레드라인"등에 출연했던 애드리언 브로디의 얼굴표정에는 귀기가 서려 있다. 바르샤바의 잿빛 풍경은 지독하게 암울하다. 내년 1월1일 개봉. 12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