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워싱턴엔 뉴스가 없다.

의회는 문을 닫고,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전부터 휴가를 떠나 1월 초에나 백악관으로 돌아온다.

뉴스의 인물이 없는 탓에 한 해를 돌아보는 회고물이 TV뉴스 시간을 장식하고 있다.

경제뉴스는 더 빈약하다.

크리스마스 세일이 기대에 못미쳤다는 소식을 반복해서 전하거나, '믿거나 말거나 식'의 내년 증시전망을 하는게 고작이다.

그나마 이라크 개전 준비 소식을 알리는 뉴스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아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TV의 주요 뉴스시간대를 북한이 독차지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2명을 추방키로 한 후 북한 핵이 이라크보다 더 비중있는 뉴스로 부상했다.

뉴스의 제목도 '카운트다운 이라크'에서 북한을 앞세운 '북한, 이라크, 핵'으로 바뀌었다.

북한 전문가나 핵 전문가들은 이곳 저곳에 얼굴을 내미느라 휴가를 반납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텍사스주 크로포드 목장에서 취재중인 기자들도 북한 핵 사태에 대한 행정부 관계자들의 반응을 전하기에 바빴다.

신문의 톱 뉴스도 북한이 차지하고 있다.

워싱턴 타임스는 28일자 1면 톱으로 북한의 IAEA 사찰관 추방소식을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같은 날 2개면에 걸쳐서 북한 핵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지역소식에 매달리는 군소 지방신문들까지도 북한 핵사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뉴스를 전하고 있다.

조지아주의 한 지방 신문은 한국 국민들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보다 부시 대통령을 한반도 안보에 더 위협적인 인물로 본다는 조사 결과를 실어 한반도 사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언론들이 뉴스의 초점을 북한과 이라크에 동시에 맞추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북한 핵 문제가 이라크 개전이 임박했다는 선정적인 뉴스의 앞뒤로 등장, '두개의 전쟁'을 연상시킬 정도다.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일부 보수 신문들은 주한미군 철수까지 주장하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도록 하루빨리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워싱턴=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