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이용한 일명 대포통장이 유괴나 협박 등 범죄 때 입금받은 등 경찰추적을 피하는 데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현행법상 이를 단속할 만한 근거조항이 없어 당장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대출 관련 사이트에는 '대포 통장(카드,폰뱅킹,인터넷뱅킹 가능) 세트로 30만원 판매'라는 글이 올라와 있고 또 다른 신용불량자 카드상담 사이트에는 '신용상 문제 없는 대포통장,현금카드와 도장 판매,가격은 25만원 흥정 가능,2천장 정도 대량 보유하고 있으니 연락 주세요' 등의 글이 휴대폰 번호와 함께 올라와 있다. '대포통장'은 도장과 신분증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통장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습득한 주민등록증 등을 이용해 만들며 주로 은행 대출이 불가능한 신용불량자들이 많이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들 통장이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지난달 13일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불륜 현장을 폭로하겠다는 협박편지를 보내 15명으로부터 1천5백여만원을 뜯어내 경찰에 구속된 이모씨(29)는 자신의 신원을 숨기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서 '대포통장'을 구입해 이용했다. 또 지난해 10월 초등학교 1학년생을 유괴한 후 1천만원의 몸값을 요구하다 붙잡힌 김모씨(46)도 '대포통장'을 이용해 몸값을 받아냈다. 온라인상에서 구입한 '대포통장'은 아니지만 지난달 한 영화투자 배급사에 소포 폭발물을 보낸 범인도 종묘공원의 한 노숙자에게 8만원을 주고 통장을 개설하도록 시킨 다음 이 통장을 이용,원하는 돈을 입금받으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현행법상 이들 '대포통장' 거래를 단속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법무실 관계자는 3일 "금융실명제법은 주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대포통장' 같은 경우는 사실상 처벌 근거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금융정보분석원의 정유철 사무관도 "단순한 차명계좌에 불과하다면 통장 거래만으로는 처벌하기 어렵고 자금세탁이나 범죄수익 은닉 등의 고의성이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