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금전출납부까지 꼬박꼬박 기록하며 생활속에서 경제를 체득하는 학생과 용돈을 으레 부모로부터 받는데 익숙해져 있는 학생.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시장경제의 원리를 몸으로 배우는 학생과 시험답안 작성을 위해 교실 안에서 경제용어 외우기에만 급급한 학생. 어른이 된 뒤 과연 누가 더 시장경제 체제에 올바로 적응할 수 있을까. 누가 더 '부자 아빠' '부자 엄마'가 되고 누가 더 건강한 경제시민이 되어 글로벌 경쟁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한국경제신문사는 우리 청소년의 경제의식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해말 삼성경제연구소와 공동으로 6개 대도시의 중.고등학생 1천2백7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외환 위기 이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경제교육이 강조돼 왔지만 조사의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대부분의 청소년이 시장경제 원리, 노동의 가치, 돈과 신용의 중요성 등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에게 우리 경제의 미래를 맡기기가 불안할 정도라는게 조사결과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선 초보적 경제활동의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용돈의 조달 및 사용 행태에서부터 미국 등 선진국 학생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우리 청소년 10명 가운데 9명은 부모로부터 용돈을 타서 쓴다고 대답했다. 용돈기입장을 꼬박꼬박 기록하는 학생은 전체의 3.6%에 불과했다. 스스로 벌어서 용돈을 마련하는 학생은 거의 없으며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마저 무계획적으로 사용한다는 얘기다. 아르바이트를 당연시하고 주식투자까지 경험하는 미국 학생들과는 천양지차다. 미국의 대표적 청소년 경제교육기관인 JA(Junior Achievement) 조사에 따르면 미국 중.고등학생중 부모로부터 용돈을 받는 학생은 10명중 4명에 불과했다. 고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그 비율이 1명으로 낮아진다. 또 미국학생 10명중 9명은 올 겨울방학에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학기 중에도 절반 이상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주식투자를 하는 학생도 20%에 달한다. 학생 스스로 벌어서 쓰고, 저축하는 수준을 넘어 투자까지 하면서 자본주의를 몸으로 익히고 있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경제행동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무엇보다 부실한 경제교육 탓이다. 한국 청소년들이 경제지식을 습득하는 곳은 학교나 가정이 아니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경제지식을 신문 TV 등 언론을 통해 익힌다고 답했다. 가정은 경제교육 기능을 포기한지 오래다. 학교에서 배운 경제지식이 현실생활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이 넘는 학생이 '아니다'고 답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창업을 생각해본 학생은 10명중 4명에 불과했다. 책상머리에 머물고 있는 한국 경제교육의 현주소다. 김상규 대구교대 교수(사회교육)는 "수험 중심의 경제교육이 낳은 당연한 결과"라며 "경제원론의 축소판인 교과서부터 과감한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이 부실하다보니 시장경제 체제에 살면서도 시장경제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성장보다 분배부터 생각한다. 경제가 잘 된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완벽한 복지제도와 빈부격차 해소, 실업 해소라고 답한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국민소득 증대라고 답한 학생은 1백명중 고작 1명에 불과했다. 청소년들이 시장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청소년들은 휴대폰 사용료가 얼마가 나오든 걱정하지 않는다. 부모들의 지갑이 '화수분'이기 때문이다. 사회 초년병들이 신용의 중요성을 깨닫기 앞서 여러 장의 신용카드를 만들어 '돌려막기'부터 배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들은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들에게 경제의 ABC를 다시 가르쳐야 하는 실정이다. 김정호 기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