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작은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L씨는 지난해 헤드헌팅을 겸업할 계획을 세웠다. 헤드헌팅업체 등록을 위해 구청을 찾은 그는 귀를 의심했다. 담당자는 "직업소개소로 등록하라"고 했다. 헤드헌팅은 전문 인력 전직 서비스로 파출부나 일용잡부를 알선하는 직업소개소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회사 간판에 직업소개소라는 글자를 반드시 넣고 사무실내에도 각 직종별 알선요금표를 게시하라는 지시만 받았다. 또 2개월마다 '점검'을 하는데 적발되면 몇차례 경고 후에 등록을 취소하겠다는 설명도 들었다. "옛날 규정이겠지" 하고 등록을 마친 L씨는 며칠 뒤 지나다 들른 담당 공무원이 간판을 문제삼아 '경고'를 하는 것을 보고 사업을 포기했다. 규제는 하는 입장에서는 편하다. 법령에 정해진 대로 하기만 하면 '합법적'이고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L씨의 예에서 보듯 그 법령이나 규정이 옛날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 생활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옛 방식으로 옭아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악명이 높다. 외환위기 이후 적잖은 외국자본이 들어왔지만 공장이나 사업체가 직접 들어오는 경우가 아시아 경쟁국에 비해 많지 않았던 것은 각종 규제가 걸림돌로 작용한 면이 크다. 오죽하면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외국 업체에만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경제특구'를 개발하겠다고 정부가 나서야 할 정도겠는가. 문제는 정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규제를 없애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산하기구로 출범한 98년엔 기존 규제의 절반을 폐지했고 20%를 개선하는 등 엄청난 양의 규제를 개혁했다. 국내 일부 학자들이 98년의 규제개혁을 '규제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1월6일 현재 국내 행정규제 등록 건수는 모두 7천4백35건으로 98년 8월 1만7백17건에 비해 30% 줄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체감하는 규제는 여전히 많고 심각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신설, 강화된 규제가 적지 않다. 1월6일 기준으로 볼 때 그동안 신설된 규제가 1천3백29건이나 되고 강화된 규제도 6백39건에 달한다. 특히 금융감독위원회 정보통신부 재정경제부 등에서 신설된 것들이 많고 정통부 금감위 환경부 등에서 강화된 규정이 많아 기업들로서는 규제가 별로 줄어든 느낌을 가질 수 없는게 현실이기도 하다. "있으나 마나 한 것은 많이 없앴지만 핵심 규제는 오히려 늘어난 것 같다"는게 기업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규제개혁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의 끈'을 놓치 않으려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핵심이다. 규제가 많고 적은 것을 '권력'처럼 생각하는 정부 각 부처의 이기주의도 갖가지 이유로 새로운 규제가 나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 국민의 평등의식이 강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기업 관련 규제를 개혁한다고 하면 "왜 기업들만 지원해 주느냐"는 지적이 당장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규제개혁은 예산을 별도로 투입하지 않고도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어느 나라든 규제비용, 즉 규제 준수 비용과 규제로 인한 경제적 효율성의 저하에다 규제를 관리하기 위한 행정비용을 포함한 비용이 엄청나다. 미국의 경우 이 규제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8%에 달한다고 한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선거 때마다 규제개혁을 핵심공약으로 내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규제개혁은 기업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경제 전반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재정지출이 추가되지 않는, 경제를 살리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