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과 주사급에서 4명 정도의 조사요원이 나와 주로 공시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증빙자료를 챙기는 수준이었습니다. 사무실을 뒤지는 일은 전혀 없었고 2~3일 만에 끝났습니다. 조사 결과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하는 등 끝내기 수순을 밟는 정도였고요." 지난해 10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당 내부거래 현장조사'에 응했던 대기업 공정거래 담당자들의 얘기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삼성 LG SK 현대자동차 현대 현대중공업 등 6개 그룹 80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7월22일부터 시작된 내부거래 조사의 막바지 단계였다. 여름휴가마저 포기한 채 보완자료 제출 요구는 물론 혹시 나올지 모르는 '현장조사'에 대비하면서 노심초사했던 터였다. 왜 이들은 긴장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그동안의 공정위 현장조사가 광범위하면서도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데다 자료 요구도 과다했기 때문이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6월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현장조사를 받은 경험이 있는 6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현장조사는 짧게는 5일, 길게는 53일간 이어졌으며 평균 23.6일이 걸렸다. 조사를 받은 업체들은 평균 38건의 관련서류를 제출했으며 업체마다 평균 20명의 인력을 투입해야 했다. 기획담당 부서에서는 3∼8명의 인력을 상시 대기시켰고 각종 자료제출과 사실확인 등을 위해 자금 회계 경리 인사분야의 핵심 인력도 수시로 동원하는 등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차질을 빚을 정도였다. 기업들이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꺼리는 것은 조사배경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수시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에도 공정위는 내부거래 조사 이유로 주요 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2개 기업집단 재무제표 분석'에 따르면 이들 그룹의 매출액에 대한 내부거래 비중은 2000년 35.3%에서 2001년엔 32.5%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공정위는 지난 98년 이후 매년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수시로 실시해왔다. 지난해 조사를 당한 대기업 관계자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인 데다 휴가철이 겹쳐 현실적으로 서류제출 기한(10일)을 맞추기조차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1년6개월 동안의 거래내역을 건별로 작성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2000년 4월부터는 공정거래법과 증권거래법에 따라 대규모 거래는 증시에 공시토록 돼 있다. 그만큼 혐의 포착이 수월해진 상황인데도 공정위는 6개 그룹 80개사에 대해 일괄적으로 자료제출을 요구했다. 기업들의 반발이 거셌다. 한마디로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친 투망식 조사'라는 지적이었다.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일제조사를 지양하고 상시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해 내부거래 위반 혐의가 포착된 기업에 한해서만 조사에 나서야 한다"(전경련 신종익 규제조사본부장)는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 중복 규제라는 점도 부당 내부거래 조사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증권거래법 법인세법 금융감독기구설치법 등 4개 법규에 관련 조항이 마련돼 있으며 내용도 큰 차이가 없다. 실제로 지난해 전경련 조사에서도 절반 정도(48.4%)의 기업들이 공정위 조사가 끝난 후에 국세청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유사한 사안을 놓고 또 조사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부당 내부거래는 조사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기업의 대외 이미지가 실추되고 시민단체의 공격 대상이 되는 등 유.무형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업이 내부거래 조사결과 과징금을 부과받은 뒤 행정소송을 벌여 승소하더라도 만회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에도 내부거래 조사는 한다. 다만 연방공정위원회(FTC)가 위반 행위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하려면 연방거래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한 데다 △위반 혐의가 충분하고 △경제나 거래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다른 부처의 조사와 중복되지 않는 등의 엄격한 요건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경쟁제한성이 없더라도 계열사간에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위법 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는 물론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도 병과할 수 있다.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대한 이같은 제재에 대해서는 이미 2001년 9월 서울고등법원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재청을 한 상태다. 헌법이 보장하는 이중처벌 금지와 과잉 금지, 무죄추정 금지 등에 위배된다는 이유다. 부당 내부거래 조사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기업과 기업인을 '예비 범법자'로 간주하는 관행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손희식 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