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가 신용불량자 등록제도 폐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신용불량자'란 낙인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지나치게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인수위는 특히 소액 단기연체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채무자들이 거액 장기연체자와 똑같은 경제적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제도가 없어지면 그동안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경제활동에 커다란 지장을 받고 있던 소액 단기채무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개인워크아웃(신용회복지원)을 시행하면서 대두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 '신용불량자' 등록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 일정 기간 이상 연체한 사람들을 별도로 분류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나라는 한국 뿐이다. 신용정보 유통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일반적인 연체정보 외에 '신용불량자' 정보는 유통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단순 연체정보만 교환됐다. 지난 1955년 은행들이 마련한 '금융기관 연체대출금 정리에 관한 협약'을 보면 '신용불량자'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불량'이라는 단어가 붙은 정보가 교환되기 시작한 것은 1982년부터. 금융회사들은 연체자를 '주의' '황색' '적색' 등 세등급으로 나눠 '불량거래처'라는 이름으로 공유했다. 이후 95년 관련 법률을 제정하면서 '신용불량자'란 명칭을 처음 사용했다. ◆ 현행 신용불량자제도는 은행대출금의 경우 연체금이 얼마냐에 상관없이 3개월 이상을 연체하면 무조건 신용불량자로 등록된다. 신용카드대금(카드론, 신용구매대금, 할부대금)은 5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신용불량자가 된다. 다만 연체금이 30만원 이하인 경우엔 은행연합회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되기는 해도 다른 금융회사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일단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기록보존기간'이라는 게 있어 연체금을 갚아도 1∼2년동안은 은행연합회 전산망에 '전과기록'이 남게 된다. 적어도 이 기간동안에는 대출제한 등 유.무형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존기간이 지나도 기록이 사라진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 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은 은행연합회의 전산자료를 통째로 마그네틱 테이프에 담아서 신용평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따라서 보존기간이 지나 은행연합회 전산망에서 신용불량자 기록이 삭제됐어도 개별 은행이나 카드회사가 갖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한 번 신용불량자는 평생 신용불량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 미국식 신용관리 시스템으로 인수위가 염두에 두고 있는 대안은 미국식 신용관리 제도다. 한국에만 있는 '신용불량자' 정보는 원천적으로 없애되 신용평가의 기초가 되는 연체정보 등을 더욱 자유롭게 수집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 만들자는게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에 규정된 일부 정보만 은행연합회에 집중하고 있지만 미국에선 몇 가지 예외조항을 제외하곤 모든 고객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고객들의 대출금이나 카드사용 내역 등 부정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우량고객들의 신용정보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영리법인들이 개인 신용정보를 집중하고 분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행 신용관리 제도는 개인정보 보호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 신용불량등록 없어지면 어떤 영향 있나 신용불량자 제도가 없어지면 당장 2백57만여명의 신용불량자중 상당수가 '경제적 금치산자'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신용관리 제도는 채무자의 연체금액이나 연체기간에 관계없이 똑같은 불이익을 주고 있다. 금융기관들의 고객 차별화도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즉 장기적으로 갚을 능력이 있지만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로 단기연체한 채무자의 경우 금융기관들의 자체 프로그램을 통해 신용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의 한 임원은 "금융기관이 자율적이고 책임있게 부실관리를 할 수 있도록 신용불량자 제도를 없애는게 맞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김인식.조재길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