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때의 공조판서 김종서가 공조에서 약간의 술과 유과를 마련해 정승과 판서들에게 대접했다. 그러자 영의정이던 황희는 예산 외의 경비를 사사로이 지출했다며 이를 엄히 문책했다. 경(敬)과 의(義)를 학문의 신조로 삼으며 벼슬을 마다하고 처사의 삶을 살았던 남명 조식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경의(敬義)'에 관한 옛 성현의 가르침을 외웠다. 이런 남명에게 도학과 경의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제자들은 훗날 국난의 시대에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규장각 관장)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현암사, 2만5천원)에 이런 조선의 선비 25명의 삶을 담아냈다.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정암 조광조, 조선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퇴계 이황,목숨으로 충절을 지켰던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 도덕적 카리스마로 문화국가의 방향을 잡은 우암 송시열, 의병정신을 독립정신으로 물려준 의병장 유인석 등의 삶이 책에 담겨 있다. 사대부가 아니라 중인 또는 평민 출신인 겸재 정선과 영.정조 시대의 위항시인(사대부와 평민 사이의 향리.아전.중인 출신의 시인)인 조희룡도 포함돼 있다. 정 교수는 선비에 대해 "명분과 의리로써 국민을 설득하고 덕치로써 국민을 포용하려는 조선왕조가 인간화 작업의 과정에서 설정한 모범인간형"이라고 설명한다. 책에 실린 25명은 이런 선비정신의 표상들이다. 문.사.철(文史哲)을 근간으로 한 학문과 시.서.화(詩書畵)의 예술을 일치시켜 이성과 감성이 균형있게 조화된 인격체가 선비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청빈의 정신과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고 마는 서릿발같은 기개,일관된 지조와 탁월한 자기 제어력, 그 속에 간직한 해학과 여유로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생활태도 등을 탐구할수록 그들의 정신세계에 빠져들게 된다"고 경탄한다. 선비들의 영정과 초상화, 글씨 탁본과 유적사진 등 3백30장의 도판이 꼿꼿한 선비들의 삶을 생생히 전해준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