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993년에 이어 두번째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지난주 대북정책조정감독그룹 회의에서 미국이 북한과 대화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이어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이 북한에 대한 공식적인 '체제보장' 가능성을 시사해 핵문제 실마리가 풀리는 듯 했다. 그러나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한 뒤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도 언급함으로써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강경자세를 취하는 것은 대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아직은 북한이 그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만들 것 같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핵무기는 정치적 무기의 성격이 강하며,특히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실제로 보유하는 것보다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핵개발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 보다 많은 이득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아직 대화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성명 말미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압살정책을 그만두고 핵위협을 걷어 치운다면' 핵무기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북한은 핵개발 포기를 북·미 사이의 '검증'을 통해 증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에 검증을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이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북한이 왜 대화 의사를 피력하면서도 NPT 탈퇴라는 강경책을 앞세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답은 북한의 성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한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제안에 대해 미국이 '말은 해도 협상은 안 한다는 오만한 태도로 대답했다'고 비난했다. 이는 미국이 비록 대화 용의를 밝혔으나,그것이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과 핵포기 문제에 대한 '협상(negotiation)'이 아니라 단지 북한이 핵포기와 관련한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대화(talk)'라고 강조한데 대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 북한은 미국의 최근 유화제스처는 이라크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의 시간 끌기로 생각하며,미국이 이라크전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북·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NPT 탈퇴를 앞세워 미국을 압박함으로써 체제보장을 위한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에 특사를 파견키로 한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의도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핵문제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이 이런 태도를 쉽게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의 연이은 강경조치로 대화를 강조해온 온건파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따라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길은 더욱 험난해졌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해법은 이미 제시돼 있다. 북한은 핵개발 포기와 이에 대한 검증을 받고,대신 미국은 대통령의 서한을 보내든지 또는 북·미 적대관계 청산을 명시한 2000년 10월의 북·미 공동성명서를 재확인하는 방법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은 상호불신 때문에 이런 해결책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먼저 북한의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그리고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개발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너무나 여러 번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어느 쪽도 자존심상 먼저 양보하기 힘들다. 따라서 양측 모두 체면과 명분을 살리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길이 마련돼야 하며,이를 위해서는 영향력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93년의 경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중재역할을 했던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얼마전 한국 정부가 중재자를 자처한데 대해 미국이 거부감을 나타냈다. 사실 한국이 중재자가 될 수는 없다. 한반도의 핵문제에 있어서는 한국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은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제3의 중재자를 찾아야 한다. yphong@hanyang.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