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그거 나쁜거 아니에요(Money is not a four-letter word)." 지난해 12월 미국 콜로라도주 그린우드빌리지에서 만난 윌리엄 앤더스 전미금융교육재단(NEFE) 회장은 한국의 청소년 경제교육이 시작단계라는 이야기를 듣자 곧 이런 말을 했다. NEFE(National Endowment for Financial Education)는 미국의 고교생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비영리 단체. '청소년에게 돈을 가르쳐서야 되겠느냐'는 사회의 통념을 깨고 미국내 경제교육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72년 한 금융교육학회를 모체로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2백만여명의 예비 금융 전문가들을 키워냈다. 지난해에는 1만8천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NEFE의 프로그램을 거쳤다. NEFE 설립자인 앤더스 회장은 20년 넘게 금융교육사업에 투신하며 미국내 금융교육의 저변을 확대시켜 왔다. 앤더스 회장은 "NEFE가 무엇보다 금기시됐던 금융교육을 공론화했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고 밝혔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돈에 대한 교육은 성교육과 같이 공공연하게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미국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10대가 돈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죠." 돈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금융교육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실은 부모나 교사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예컨대 2000년 미국의 10대가 소비한 돈은 무려 1천5백50억달러(약 2백1조원)에 이릅니다. 또 20% 이상의 10대가 개인 당좌 계좌를 통해 수표를 발행합니다. 이들에게 금리나 자동차보험 등은 이제 생활의 일부죠. 20대에 들어서면 더욱 다양한 금융 및 보험상품들을 접해야 하지 않습니까." 엔더스 회장은 하지만 씀씀이와 생산활동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10대의 금융지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90년대 초반 금융교육단체 연합체인 점프스타트(Jump$tart)와 미국 소비자연합 등이 실시한 청소년 금융지식 수준 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학생이 기본적인 지식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앤더스 회장은 "10대들에 대한 경제교육은 더 이상 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라고 말한다. NEFE의 교육은 크게 7개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된다. △금융에 관한 정보 수집과 계획 수립 △졸업 이후 진로와 잠재적 소득 △예산 수립과 현금운용을 위한 방법 △저축과 투자 △신용카드와 대출 활용 △리스크 관리를 위한 보험 등이다. "7개의 커리큘럼을 세분화해 두시간 정도씩 배분합니다. 수업은 교사용 지침서, 학생용 교과서, 학생들이 작성하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진행되죠." 각 커리큘럼 첫 단락은 '믿을 수 있겠어요?(Can you believe?)'라는 퀴즈로 시작된다. 학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일상생활에서 쉽사리 못느끼는 경제수치들을 퀴즈 형식으로 제시하면서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예산 수립과 현금운용을 위한 방법'에서 학생들은 미국 10대들의 평균 소비액과 저축액에 대한 수치들을 퀴즈로 푼다. "미국의 10대가 1년에 벌어들이는 금액은 얼마나 될까요?" 학생들의 대답은 5백∼2천달러(65만~2백60만원)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정답은 3천여달러(약 3백90만원). 학생들은 놀라게 된다. 10대들이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많이 버는지' 또 '얼마나 많이 소비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학생들은 스스로의 소비액을 산정해 본다. 그리고 자신들의 씀씀이가 의외로 크다는 점을 파악하게 된다. 수업은 자연스레 예산 수립과정으로 학생들을 유도한다. 학생들은 갖가지 툴을 이용해 소비액을 줄이고 투자로 전환하는 기법 등을 배운다. 실제 세금계산서를 통해 다양한 절세방안도 배운다. NEFE가 교육현장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된 데는 탄탄한 커리큘럼과 함께 엄격한 독립성도 한몫 했다. NEFE는 설립 초기 정부기관을 제외한 외부의 자금 지원을 일절 받지 않았다. 자칫 상업화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라는게 앤더스 회장의 설명이다. "지금도 정부와 연구소에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모든 교재도 무료로 제공하고 있지요." 앤더스 회장은 "금융기법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만큼 교육받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지식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며 "꾸준한 금융교육과 함께 커리큘럼에 대한 끊임없는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린우드빌리지(콜로라도주)=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