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분야 실험재료인 합성유전자를 생산하는 바이오 벤처 A사. 국내 바이오 업계의 선두기업으로 꼽히고 있지만 재무와 마케팅분야 두뇌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98년부터 2년여 동안 6백억∼7백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합성유전자 시장이 급속도로 커진 데다 99년부터 시작된 벤처투자 열기까지 겹치면서 엄청난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 2000년 초엔 액면가 5천원 주식을 80배인 40만원에 할증발행,3백억원 이상을 유치했다. 자금관리 등을 위해 A사는 공인회계사를 CFO(최고재무경영자)로 영입했다. 하지만 수익을 내는 치밀한 재무관리 전략을 짜내지는 못했다. 처음부터 체계적인 사업계획을 세워 자금을 모은 게 아니라 '묻지마 투자'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CFO는 코스닥 등록을 위해 온힘을 쏟았지만 결국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무차별하게 끌어모은 자금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 그는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현재 액면가 5백원인 주식이장외시장에서 4천∼5천원선에 거래되고 있어 코스닥에 등록되더라도 주주들은 엄청난 평가손을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돌파구로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나 이 또한 만만치 않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사원 2백명에 1만평 규모의 공장까지 갖춘 회사로서는 재무 마케팅 등 분야별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재무나 마케팅분야가 취약한 벤처가 A사만은 아니다. 바이오 벤처는 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들이 기술력 하나만을 믿고 창업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기엔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경영에 문제를 드러내게 된다. 기술자인 창업주가 재무 인사 마케팅 등을 도맡아 처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에 몰린다.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기 위해 뒤늦게 분야별 전문 경영인을 확보하지만 실패하기가 십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 김치훈 바이오 담당 애널리스트는 "바이오 벤처 기업인들은 대부분 기술뿐 아니라 마케팅 재무 인사 등 모든 업무를 혼자서 맡고있다"며 "벤처도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전문가를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과 경영을 분리,전문가에게 아예 경영권을 위임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일부 바이오업체에서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 있다. 마크로젠은 삼성전자 계열인 삼성엠피온의 부사장을 지낸 유항재씨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유 대표는 마케팅 재무 조직관리 등을 맡고 있다. 서정선 대표는 기술분야에만 전념하고 있다. 바이오가 기술집약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만큼 기술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국내 바이오업체들도 기술과 경영을 분담하는 체제 구축에 나서야 한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