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공시제도는 현정부가 기업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해온 개혁 작업의 하나다.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성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다. 특히 미국의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 부정 사건으로 기업 투명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문제는 지난 5년간 정부가 도입해온 회계투명성 강화조치만으로도 거의 충분한 수준인데도 개혁이라는 명분에 치우쳐 불필요한 중복규제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시행된 것만 봐도 △결합재무제표 도입 △회계 및 공시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 △감사위원회 설치 △내부회계관리제도 시행 등 어느 측면에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초월할 정도다(전경련 경제조사본부 양세영 팀장). 이 가운데 '실제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모든 계열사와 회계를 연결하는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정부가 공정공시제도를 도입하자 기업들은 '실수 몇번에' 상장폐지라는 제재까지 받게 될 상황에 몰렸다며 불평을 토하고 있다. 기업들은 공정공시제도뿐 아니라 정부가 앞으로도 투명성 관련 규제를 계속 늘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실제 정부가 올해 도입을 목표로 추진 중인 회계제도개선안은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는 조항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개선안은 공시서류의 허위표시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보고서 등에 CEO(최고경영자)나 CFO(최고재무임원)의 서약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공개기업의 경우 사업보고서.유가증권신고서 등에 대표이사가 날인하고 있고 특히 허위표시임을 알고 날인할 경우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하고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중복규제에 해당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행 기업회계 관련규정은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결여돼 있어 언제든지 위반으로 적발당할 가능성이 있다"며 "무한책임에 노출된 상황에서 앞으로 누가 선뜻 경영자가 되겠다고 나설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도 "미국도 외국기업에는 적용예외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도입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투명해지는 것은 좋으나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못할 정도로 옭아매는 것은 경제 전반의 위축현상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정책의 목표가 기업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라면 굳이 새로운 규제를 만들 것이 아니라 현행 규정을 철저히 집행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노력이 우선 필요하다는게 재계의 전반적인 정서다. 손희식 기자 hssh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