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관영 CCTV가 얼마전 '2002년 10대 경제인 시상식'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경제계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인물에게 상을 주는 행사였다. 수상자 중 낯이 선 한 사람이 화면에 등장했다. 수수한 차림의 30대 여성 류수웨이(劉姝威)씨가 주인공.사회자는 그를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용기를 보여준 여인"이라고 소개했다. 류씨는 베이징 중앙재경대학에서 회계학을 연구하는 평범한 연구원.그는 지난 2001년 12월 상장기업인 란톈(藍田)그룹의 회계분식 사실을 터뜨리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수익 창출능력이 없는 란톈은 껍데기 기업이다. 그럼에도 회계장부를 조작,우량기업으로 행세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는 "란톈에 대한 은행 대출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경제시스템에 대한 정면공격이기도 했다. 중국 은행들은 계획경제의 타성에 젖어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 돈을 퍼붓고 있다. 은행은 해당기업의 부실내용을 알면서도 손을 떼지 못하는 처지가 됐고, 은행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 보고서는 결국 중국경제의 최대 문제인 금융부실의 생성과정을 폭로한 것이다. 류씨는 금융업계 고위지도자들이 읽는 '진룽네이찬(金融內參)'에 이 보고서를 실었고,즉각 효력이 발생했다. 란톈에 대한 은행 대출이 중단된 것이다. 이에 반발한 란톈은 류씨를 고소,작년 양측 간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류씨는 정체불명의 사람들로부터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란톈의 치부를 연이어 밝혀냈다. 법정은 류씨의 손을 들어줬고,란톈그룹 회사들은 거래정지를 당했다. 은행 및 금융당국이 란톈의 부실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그들은 타성에 젖어,또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입을 열지 않았을 뿐이다. CCTV가 '10대 경제인'으로 류씨를 선정한 것은 결국 잠들어 있는 경제계 양심을 흔들어 깨우자는 뜻이다. 류씨의 용기는 내부자거래 회계조작 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증시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