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부처에서 파견하고 부사장은 정치인 K씨 추천으로 들어오고,직원들도 대부분 민원을 받아들여 선발한 회사에서 무슨 개혁입니까." 얼마전 모 정부 산하기관 임원은 이렇게 푸념했다. 사장이 마음 먹고 구조조정을 하고 싶어도 곳곳에서 들어오는 민원 때문에 뜻대로 할 수 없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훌륭한 CEO'를 꿈꾸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상당수 공기업 사장들이 이런 저런 걸림돌들에 차인 채 주저앉고 만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공기업과 산하기관이 이런 상황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최근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기업 및 산하기관 인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개혁성'을 제시했다. 전문적 능력을 갖췄더라도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유형의 사람은 공기업의 경쟁력 및 공공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전문성보다 개혁을 기준으로 하면 결국은 낙하산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 당선자가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도 임기 초반에 '개혁 인사'를 표방하며 많은 사람을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에 내보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개혁보다는 '정치권 눈치보기'와 자신의 안일에 신경 쓰면서 오히려 조직의 활력과 경쟁력을 갉아먹었을 뿐이라는 지탄을 받고 있다. '인사가 만사(萬事)'라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은 국민들은 이들을 통해 현 정부 자체를 불신의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이런 요인 등으로 인해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졌다는 분석도 크게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개혁인사와 정실인사 낙하산인사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인사에 있어 '개혁'과 '낙하산'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는 얘기다. 노 당선자 본인이 성공한 CEO가 되고 싶어하듯 공기업 산하기관에 파견한 개혁적 인사들도 성공한 CEO로 만들기 위해서는 철저한 검증과 함께 정치권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할 보완조치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