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책과 함께] '30세대' 눈에 비친 나, 너 그리고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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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 이명랑(30)씨와 한차현(33)씨가 오랜만에 소설 "삼오식당"(시공사,8천원)과 "영광전당포 살인사건"(생각의 나무,9천5백원)을 출간했다.
이씨는 지난 97년 문학무크지 "새로운"에 시 "에피스와르의 꽃"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한씨는 지난 99년 장편소설 "괴력들"을 내놓으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두 사람의 연배는 비슷하지만 소설이 다루는 내용과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판이하게 달라 대조를 이룬다.
이씨가 "꽃을 던지고 싶다"이후 4년만에 내놓은 연작소설 "삼오식당"은 재래시장을 배경으로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들의 눈물과 한숨,삶의 악다구니를 따스한 시선과 구성진 입담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작품의 무대는 영등포시장.실제 시장통 식당집 둘째딸이기도 한 작가는 자신의 분신인 삼오식당 둘째딸 지선의 눈을 통해 시장 서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낸다.
노름빚으로 도망간 무능력한 남편을 둔 과일가게 0번 아줌마,일수꾼 특유의 곤조를 자랑하는 로타리 할머니,술집여자의 마지막 순애보를 처절하게 대변하는 노랑머리,반평도 안되는 평상위에서 자식들 공부시키고 살림밑천까지 마련한 봉투아줌마,눈알을 번뜩거리며 공중화장실을 지키는 똥할매등 사연많은 인생들의 온갖 이야기가 7개의 연작속에서 펼쳐진다.
상인특유의 언어는 물론 온갖 비속어와 은어들이 출몰하는 "장터의 언어 교향곡"같은 소설(강상희.문학평론가)을 따라 읽다 보면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타인의 동정이나 연민이 단 한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사람들은 무엇으로,어떻게,이 생을,그 박복한 운명을 견디어내는 것일까.'삼오식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한씨의 장편소설 "영광 전당포 살인사건"은 최근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복제인간과 레플리컨트(유전자 합성인간)등을 등장시켜 판타지와 추리소설의 냄새를 풍기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만 읽어보면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차연"과 같은 아파트에 살던 독거노인이 어느날 끔찍하게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노인을 죽인 사람은 옆집에 살던 김시민으로 밝혀진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아니라 수명이 7년밖에 안되는 레플리컨트다.
더구나 김시민이 죽인 것으로만 여겼던 노인도 고문기술자 전형근이 아니라 전형근의 복제인간으로 밝혀진다.
책장을 덮을 때까지 소설은 김시민을 제외한 인물들이 과연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밝히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둔다.
작가는 가상과 실재,거짓과 진실의 미학을 교묘하고 능란하게 휘두르며 독자들을 SF와 리얼리즘이 공존하는 또 하나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소설가 구효서는 "이 소설은 추리이자 판타지이고,폭력과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는 사회비판 문학이면서 또한 지독한 존재론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선과 악,내면과 외부,나와 남의 경계가 서로의 가치에 의존해 생멸해 간다는 진리의 한복판을 작가는 신세대의 발랄한 엽기취향으로 상쾌하게 가로지른다"고 평가했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