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오래전의 악몽이 되살아 나고 있다. 9년전 북한 김일성 주석은 국제 핵사찰단을 추방하고 영변에서 핵개발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협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을 검토했다. 동시에 유엔을 통해 북한에 경제제재를 하는 방안도 고민했다. 북한은 미국의 이같은 조치를 전쟁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같은 상황은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 위험을 고조시켰다. 그러나 북한이 원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핵공격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사로 북한에 파견됐다. 그 결과 제네바합의가 탄생했다. 김 주석은 핵동결을 약속했고 국제사회의 핵개발 감시를 수용했다.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대한 핵공격은 없을 것이며 전력 공급을 위해 경수로를 건설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합의는 김 주석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권좌에 오른 뒤에도 유효했다. 김 주석은 북·미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대화할 것을 원했다. 그의 구상속에는 한국전 당시 미군포로 송환과 주한미군을 포함한 남북 양국의 군비감축 제안도 포함돼 있었다. 북·미 양국은 실질적인 관계 진전을 이뤄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이 단적인 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급변하기 시작했다.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거부했다. 그리고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인민을 굶기는' 김정일에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했다. 이 모든 상황으로 인해 북한은 "미국의 대이라크전이 끝나면 우리가 다음 표적이 될 것"이라며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인하며 제네바협정을 위반함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중단할 때까지 북한과의 어떠한 대화도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북한에 대한 중유지원도 중단됐다. 국제 핵사찰단은 다시 한번 추방됐다. 이어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탈퇴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상황은 현재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가 결코 북한의 핵개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은 하루 빨리 북한의 핵 위협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또 이를 위해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관계가 정상화되고 경제적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 정책 고수와 미국의 대화거부는 이같은 세계 각국의 열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양측은 아직까지 한 걸음씩 양보해 진지하게 대화할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포럼이 개최되어야 한다. 장소는 러시아나 중국 등이 적당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북한은 NPT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미국도 북한에 대해 불가침 선언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양국은 1994년 제네바합의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한반도는 평화를 되찾게 될 것이며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이 글은 워싱턴포스트(1월14일자)에 실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기고문 'Back to the Framework'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