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2년 11월 어느날 심야에 네덜란드의 노동계 대표가 재계 대표의 집을 찾았다. 노동계 대표는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망한다"며 "노동계도 양보할테니 사용자 측에서도 한발 물러서 타협점을 찾자"고 제의했다. 당시 네덜란드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던 무렵이었다. 2차 오일 쇼크와 과도한 사회보장 지출, 이에 따른 국민들의 노동기피로 인해 정부재정은 통제불능 상태였다. 설비과잉으로 제조업체가 25개중 한개 꼴로 도산했으며 매월 1만명씩 실업자가 쏟아져 실업률이 12%까지 치솟았다. 81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0.5%를 기록할 정도였다. 82년에 출범한 루버스 내각은 급기야 과감한 경제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임금인상 억제, 노동시간 단축, 임금보다는 고용중시' 등에 대한 노.사.정 합의를 유도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노동계 대표가 사용자측 대표를 만나 '상호 양보'를 촉구했고 그 결과 대타협을 일궈낸 것이다. 헤이그 북쪽 5㎞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바세나에서 노.사.정이 합의한 '바세나 협약'(Wassenaar Agreement)이다. 노동계는 임금인상 억제와 임금 물가연동제 시행유보 등을 받아들였고,회사측은 노동시간 5% 단축과 노동기회 재분배로 고용창출(Job Sharing) 등을 수용했다. 한마디로 '임금억제를 통한 고용창출'에 합의한 것이다. 정부도 '감세'로 지원했다. 당시 노조측 대표가 바로 지금의 윔 코크 총리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은 "당시 네덜란드에선 노사 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나라경제를 위기에서 건져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야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동북아 중심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표본이 된 '폴더(Polder) 모델'은 이렇게 탄생했다. 폴더란 바다를 간척해 만든 평지를 말한다. 이 폴더모델의 중심엔 바세나협약이 자리잡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개혁의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폴더모델 덕분에 네덜란드는 90년대 들어 경제성장과 고용창출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우등국가로 거듭난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난 90년대 네덜란드는 연평균 2.6% 성장해 유럽연합(EU) 평균치(1.8%)를 훨씬 웃돌았다. 지난해 7월 현재 실업률은 완전고용 수준인 3.25%로 낮아졌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고 신규고용 인센티브 부여 등 고용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다. 네덜란드는 80년대 후반부터는 기업 진입.퇴출 장벽을 제거해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파산의 위험을 고려한 엄격한 창업법이 오히려 창업을 억제한다는 판단에 따라 2006년까지 창업법 자체를 폐지하기도 했다. 경제회생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정부의 과감한 결단력 및 정책 일관성,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한 노사간의 신뢰가 네덜란드를 유럽의 '작은 거인'으로 만든 것이다. 폴더모델은 지금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hsso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