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토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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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스티븐 콜민 박사는 토론을 잘 하기 위해서는 6단계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어떤 상황이 일어난 상태를 설명하고,그에 대한 결론을 말하고,결론을 내린 이유를 제시하고,결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고,반대의견을 고려해 자기 주장을 더욱 강하게 피력하고 마지막으로 종합의견을 낸다.
이것이 콜민의 '6단 논법'이다.
민주주의가 토론에서 출발한 까닭에 서구에서는 토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커뮤니케이션기법과 듣기,논쟁하는 방법 등 토론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는다.
찬·반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미국의 '아카데미식 토론방법'은 토론의 전형으로 꼽힌다.
'토론의 나라' 영국에서는 해마다 '토론왕'을 선발하는데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등 대학의 토론동아리에는 수천명의 학생이 가입해 있으며 주말이면 으레 토론회가 열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토론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것 같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촉발된 토론문화가 지난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까지 나서 토론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토론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힐 정도이다.
그러나 토론문화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없지 않다.
단번에 상대방을 제압하려 드는가 하면 흑백논리가 팽배하고 흠집내기에 주력하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식이며 "나와 의견이 다르면 용서할 수 없다"는 의식이 남아 있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는 일찍이 건전한 토론문화가 있었다.
조선시대 이황과 기대승간의 8년간에 걸친 '사단칠정(四端七情)'논쟁과, 이간과 한원진간의 사람과 짐승의 본성은 같을까 다를까 하는 '인성물성(人性物性)'논쟁이 대표적이랄 수 있다.
치열한 논쟁속에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선비의 금도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숙되기 위한 우선 조건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토론문화라는 생각이다.
특히 국제교류와 협상이 빈번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성숙한 토론문화는 국가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