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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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으로 방향을 바꾸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 그것을 헤쳐 버릴 수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사람들을 둘러쌌고,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
안개는 이처럼 모든 것을 차단한다.
심할 경우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밤안개가 자욱한 날 가로등 불빛만 뿌연 자유로를 지나노라면 마치 깊은 터널 속을 지나는 듯 아득하고 무섭다.
막연한 상황에서 헤매고 다니는 걸 '안개 낀 날 소 찾듯'이라고 하는 것도 그런 막막함 탓일 것이다.
시정거리가 2백? 이하면 항공기의 운항이 아예 금지된다.
안개는 수증기를 많이 담은 따뜻한 바다 공기가 찬 지표면 위로, 혹은 찬 공기가 따뜻한 수면 위로 움직일 때 생긴다.
바람이 없고 일교차가 큰 날 저녁이나 새벽, 강이나 호수 바다 근처에 잘 생기는 건 그 때문이다.
영종도 인천공항에 바다안개(海霧)가 잦은 것도 수증기를 많이 머금은 바다 공기가 갑작스레 식은 육지로 이동하면서 응결되는 탓이라고 한다.
서해 연안은 수심이 낮아 대기상태에 따라 해양이 빠르게 반응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연간 안개 일수가 김포공항의 60%라던 조사와 달리 안개로 인한 회항과 출발 지연이 잦자 인천 국제공항공사가 안개제거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전자기파를 쏘아 대기속 수증기를 분해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해무는 바닷물 온도 측정이 어려워 발생 및 소멸에 대한 정확한 예보가 불가능했지만 부산대 안중배 교수팀이 기상청과 함께 프로그램을 개발, 몇년 뒤면 하루 전 예측이 가능하리라는 보도도 있다.
시스템과 예보 기능이 작동되면 안개 때문에 공항의 기능이 마비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안개지역에 갇혔다 빠져 나오거나 해가 뜨면서 안개가 걷혀 앞이 보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짐작하기 어려운 세상사나 개인의 인생 앞에 놓인 안개를 물리칠 방법은 없는 걸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