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휴대폰 번호정책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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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산업의 1개월은 다른 산업의 1년이다." 정보통신부가 내놓은 이동전화번호 개선계획이 정부와 특정사업자간,사업자들간 갈등을 증폭시키면서 장관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굳이 그래야 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정통부의 대답이다.
임기가 하루 남았더라도 산업의 특성상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이것이 정책의 설득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임기와 상관없이 여전히 중요한 것은 그 할 일을 '어떻게 하느냐'이고,이는 정책의 투명성과 직결된다.
어쩌면 임기가 다 될수록 이 문제는 더 중요할지 모르며,1개월이 다른 산업의 1년에 해당하는 통신산업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있다.
이동전화번호를 사업자식별번호 없이 '010'으로 통합하는 계획 그 자체는 사실 새로운 '할 일'이라고 내세울 것도 없다.
그런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니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조기 도입쪽으로 돌아섰다는 것이고,1년도 안돼 이미 예정된 일정을 뒤엎었다는 데 있다.
정통부는 '향후 5년내' 하기로 했으니 '내년'에 시작한다고 무슨 문제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상식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1년 가량 준비했다지만 정책의 투명성은 시간의 문제가 아닌 의견수렴 절차에 있다는 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전화번호는 국가자원인데 사업자가 무슨 브랜드 가치 운운하느냐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편리한 상황논리'에 다름 아니다.
사업자별로 시차를 두고 번호이동성을 적용한다는 것도 그 창의적(?) 발상의 근거가 뭔지 석연치 않다.
번호이동성 도입은 비용-편익 분석을 따져 편익이 훨씬 크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편익은 경쟁상황 보급률 도입시기 도입방법 예상전환율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양방형의 번호이동성 일시 도입과 일방형의 번호이동성 시차 도입의 비용-편익이 각각 어떻게 나왔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단지 선발사업자로의 가입자 쏠림이 걱정돼 그랬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요금 마케팅 등 다른 규제도 많은데 번호이동성만으로 우려할 만한 쏠림이 일어난다고 본 근거도 물론 포함해서다.
만약 번호이동성을 양방형으로 일시에 실시한다고 했다면 이동전화사업자 모두 반발했을지도 모른다.
보급률이 70%대의 성숙시장에서 신규사업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면 기존사업자들로선 사실 '피곤한(?) 경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방형 번호이동성 시차 도입으로 선두사업자 SK텔레콤은 불리하고,KTF LG텔레콤은 유리하다는 모양이지만 이것은 사업자 입장에서일 뿐 가입자 입장에서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사업자간 경쟁촉진으로 소비자 편익을 높이자는 것이 번호이동성이라면 정통부는 정책의 명분 또한 잃어버린 것인지 모른다.
논설ㆍ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