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때 농촌 들녘에 영글어가는 곡식이나 과일의 손실을 막으려 짚단과 헌옷가지로 만들어 세우는 허수아비들을 몇해 전부터 약아빠진 까막까치들이 우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바로 그런 허수아비들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곧잘 다수의 인간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우선 선거 때 등장한 허수아비들이 그랬다. 대선 후보들은 여·야 구분 없이 보수·혁신의 중간 부동층표를 얻기 위해 인기영합적 공약을 남발했다. 각 진영에서는 자기편 후보자를 그의 평소 소신과 달리 돋보이게 단장시켜 만든 허수아비를 등장시켰다. 이러다보니 때때로는 보·혁의 입장이 전도된 대목도 있었다. 한편 상대방 후보에 대해서는 그의 주장을 극단론으로 몰아 밉보이게 분장시켜 세운 허수아비도 있었다. 머리염색,보톡스 주사 등 미용기술과 의상 코디보다도 이같은 정신적 이미지 메이킹이 선거를 판가름했다. 요즘 말이 많은 당선자 인수위는 한동안 그 후유증에 고통을 겪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분장한 인기영합공약들 가운데 취사선택하는 문제,다른 한편으로는 반대파에서 덧칠한 극단론(사회주의 성향 등)을 잠재우는 문제로 힘겨울 것이다. 반미시위에서 두번째 허수아비를 본다. 여중생 사망으로 시작된 대중시위는 균형감각을 잃은 지 오래다. 성조기를 불태우고 부시 대통령 허수아비를 불태웠다. 민족적 자존심은 세워 백번 옳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의 국가 생존은 우방과의 결속에 기초한다. 어떤 의미에서 주한미군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잡아 둔 인질인 셈이다. 반만년 역사에 인접한 강대국들에 강제 편입·동화되지 않고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해 온 것은 먼 나라와 사귀어 가까운 나라를 치거나 견제해 온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슬기 때문이다. 데모대가 불태운 것은 우리 안보의 상징이 아닐까. YS 정부시절 대통령이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겠다 벼르다 대일관계가 악화되고 그것이 97년 환란의 먼 원인 중 하나로 치부된다. 경제적 주권을 잃고 많은 직장인들이 실직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번 촛불시위로 미국 버릇고치기에 나선 시위대는 자칫 안보실종의 고통을 초래할 것 같아 걱정이다. 마늘 수입 마찰에서 맛보기했지만 장차 대중국 관계에서도 큰 낭패를 경험할 것이다.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시위로 될 일,안될 일 따로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세번째 허수아비는 대북자세에서 볼 수 있다. 수백만 주민을 아사시키고 수십만을 정치수용소에 감금·억압하며,전방에 공격준비 완료된 백만 군대를 배치하고 있는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남한의 국민은 북의 핵·생화학·재래식 등 모든 병기의 공격을 이기고 살아남을 수 있는 신판 '터미네이터' 영화에 등장하는 인조인간들인가. 아니면 김정일이 동족이라서 남한국민을 살생하지 않으리라고 믿기 때문인가. 역사상 동족상잔이 이민족 살육보다 잔인함이 덜했던 전쟁은 거의 없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래 김정일 체제 찬사보도들이 우리에게 북한의 미화된 허상을 심었다. 외교에는 채찍과 당근이 함께 동원돼야 힘이 붙는다. 당근만 있고 채찍이 없는 대북 자세는 평양이 코웃음거리로 여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도 핵무기 개발로 맞서야 한다. 우세한 경제력을 가진 우리가 그들에 뒤질 수 없는 단호함을 보여야 한다. 네번째로 대선 이후 의기소침한 50대 이상 고령인구의 허수아비 꼴이 문제다. 기성 세대가 나라를 세우는 일,지키는 일,경제를 일으키는 일,고속도로 등 수많은 사회간접자본을 만들어 '무임승차'한 신세대에 넘겨주고 졸지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느낌을 통감·자조하고 있다. 지나친 자조는 금물이다. 지금의 신세대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다가 또다른 무임승차 세대에 밀림을 당할 것이다. 동서고금 모든 사회는 세대 간 갈등을 겪으면서 발전한다. 요즘 까막까치는 허수아비를 제대로 알아볼 만큼 영악해졌다. 사람이 그보다 못해서야 어찌 인간이겠는가. 나라의 근심,내우외환 가운데 흔히 나라안의 근심걱정이 쇠퇴·멸망의 단초가 되었음을 경계해야 한다.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