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공무원 골프'와 시장개입..임혁 <경제부 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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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들이 자주 쓰는 용어에 '공무원 골프'라는 말이 있다.
퍼팅을 너무 신중하게 하는 바람에 공이 홀에 못미쳤을 때 나오는 얘기다.
아마도 공무원들이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한다는 뜻에서 만들어낸 말인 듯 싶다.
한데 필자의 경험으론 이 용어가 그리 맞는 얘기인 것 같지 않다.
특히 경제관료들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들이 퍼팅을 잘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시장을 다루는데 있어 그다지 신중한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조심스럽기는커녕 우악스럽기 짝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
단적인 예가 가계대출 억제 시책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작년 하반기에는 숨가쁘게 가계대출 억제조치가 쏟아졌다.
신용카드사의 대출영업 비중을 50% 이내로 제한한 것을 시발로 가계대출 대손충당금 적립비율 상향조정,주택담보인정비율 하향조정,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위험자산가중치 상향조정 등이 이어졌다.
급기야 가계대출 심사때도 '부채비율 2백50%'라는 전대미문의 잣대가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가계대출 증가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됐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또 어느 정도 부채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들까지 일시에 빚상환 요구에 몰려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극장에 불이 난 경우를 연상케 한다.
지금 '가계대출'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
그런데 극장 한 구석에서 불이 나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당신이 극장관리인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무작정 '불이야'라고 외치면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관객들이 질서있게 빠져나갈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게 최선책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취한 행동은 '질서있는 퇴출'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불이 난 극장에 영화를 보러 들어가는 '멍청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비상구만 남기고 출입문마저 닫아버렸다.
경제 관료들의 이런 우악스러운 시장개입은 비단 가계대출 억제시책의 예에서만 발견되는 게 아니다.
경제의 다른 영역에서도 '사회공학적' 발상에 의한 '반(反)시장적' 정책이 공공연히 취해진다.
냉온탕식 부동산 정책 등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이처럼 반시장적 정책을 취할 때에는 '시장의 실패'라는 개념이 동원된다.
경제학적으로 '파레토 균형'이 깨진 상황을 뜻하는 시장의 실패는 실제 종종 발생한다.
정보의 비대칭이나 외부 비경제,독과점 등이 존재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 경우 정부의 개입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의 실패'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정부의 실패'다.
정부개입에 따른 비용은 행정 비용 및 관리 비용이 존재할 뿐 아니라,정치논리가 개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개입은 시장경제와 달리 비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시장 구조는 변하기 쉽지만,정부 개입은 한번 이루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 뷰캐넌은 "최악의 시장이 최선의 정부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악의 시장에서도 개인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지만,최선의 정부라 하더라도 개인은 누구나 권리를 위협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은 설사 그것이 필요한 상황이더라도 극히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새 정부에서는 부디 경제관료들이 '퍼팅하듯이' 조심스럽게 시장을 다루어주길 기대해 본다.
limhyu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