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IT대 교수 4명은 지난주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부시 대통령이 보낸 이 편지에는 '세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답변 요청서가 들어 있었다. 로드니 브룩스 AI(인공지능)랩 교수는 "미국 대학이 지구촌 미래를 이끌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과당경쟁으로 인해 대학이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처럼 되고 있다. "며 "대학에서 순수과학을 연구하는 상아탑 기능도 살아날 수 있도록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세계의 대학들이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대학으로 기업과 연구소가 모여들고 있다. 산.학.연이 똘똘 뭉쳐 대규모 집적단지(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얻은 기술과 정보를 활용, 산.학.연 체제를 다지고 있다. 연구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이 어우러진 코피티션(Copetition) 현상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대학 기업 연구소 등 과학기술개발 주체들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 대학이 연구개발의 핵으로 떠올랐다 =연구개발의 중추가 정부 및 민간연구소에서 대학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중관춘에는 칭화대와 베이징대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대학은 인재와 기술 공급의 창구가 되고 있다. 중국 대학에서 운영중인 기업 매출의 절반을 중관춘이 차지하고 있다. 독일의 대학은 이미 생산공장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기계분야의 명문인 아헨공대는 세계의 주요 자동차회사와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생들은 공장에서 실습을 의무적으로 한다. 교수가 되려면 기업체 경력을 필요로 한다. 교수들도 대학 연구소의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 기업을 안방 드나들듯 한다. 최근에는 주니어 교수제를 도입, 산.학.연 체제에 대비하는 등 혁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핀란드 울루단지에서도 울루대는 그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울루단지에 몸담고 있는 인력의 80% 정도가 울루대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MIT는 교내 홍보실을 대폭 개편, 기업체 홍보실처럼 대학의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홈페이지도 따로 만들고 기업체와 직접 접촉하고 있다. 일본의 와세다대도 캠퍼스 전체를 벤처화하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인큐베이션 시설을 개설하고 학생회관도 24시간 체제로 개방했다. 대학은 이제 단순한 상아탑이 아니고 지식과 기술을 결합하고 이를 상품화하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 연구소도 자립해야 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는 최근 연구성과를 알리는 바자를 열었다. 이 행사엔 곧바로 상업화가 가능한 기술들이 수없이 선보였다. "프랑스의 저력은 기초연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연구소도 변해야 할 때입니다. " 프랑스 장 자크 포레 국립과학연구센터 국제협력실장은 "연구원들이 직접 나서 사업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이나 일본 이화학연구소 등은 연구과제를 외부 연구자에게 개방한다. 내부와 외부간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내부 인력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움직임이다.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는 정부 지원 비중을 전체 예산의 10%로까지 떨어뜨렸다. 정부지원은 몇년 전까지만 해도 50%에 이르렀었다. 영국도 공공연구소의 민영화에 시동을 걸고 나섰다. 경쟁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연구소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 기업연구소 설립에 국경이 없다 =네덜란드의 생활필수품 회사인 유니레버는 최근 연구소 본부를 미국으로 옮겼다. 석유회사인 셸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급인력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이제 좋은 인재와 연구환경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갈 것입니다."(데 브리스 필립스 연구소 홍보실장) 필립스는 이미 미국 MIT나 상하이 독일 아헨공대 근처에 핵심 연구소를 두고 이들 대학과 협력관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독일 지멘스도 외국 연구소 설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불황 이후 유럽에 많은 연구소를 차렸다. 현재 3백개 이상에 이르고 있다. 국내 연구비(6백75억엔)의 무려 2.5배나 된다. 그로벌 시대를 맞아 기업들은 세계 곳곳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 글로벌소싱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오춘호 기자 strong-kor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