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랑=기업투자 ..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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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e1home@yahoo.co.kr
얼마전 구조조정을 끝낸 기업인 한 분을 만났다.
고생했던 이야기 끝에 그 분은 요즘 우리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갸우뚱 하자,아마 자금사정은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어줬다.
가령,위기 전에는 회사 장부에 10대의 지게차가 있었다.
운전수로 10명의 정규직을 고용했는데,이중 절반은 항시 수리중이거나 일거리가 없어 노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물론 놀더라도 급여는 고정비로 꾸준히 빠져나갔다.
그러나 구조조정으로 지게차 10대 모두를 운전수에게 팔고 장부에서 떨었다고 한다.
구매자금은 회사가 빌려줬다.
대신 벌어서 갚도록 했다.
동시에 회사는 지게차 운반실적에 따라 사용료를 내기로 계약을 바꿨다.
그뒤의 변화는 이러했다.
가장 효율적인 5대만 남고,5대는 자연스레 도태가 됐다.
남은 운전수의 수입은 전보다 배 가까이 늘었다.
지게차의 잦은 고장도 없어졌다.
회사도 같은 물량의 처리에 총비용이 줄었다.
그뿐 아니라 회사의 재무제표도 가벼워졌다.
무거운 지게차가 자산항목에서 빠지고,그만큼 부채도 줄었다.
많은 고정비 요소들이 변동비 형태로 바뀌다보니,회사는 경기변동에 대처하는 재무적 탄력성이 높아졌다.
앞으로도 기업들의 자산은 줄어들고,대부분의 비용은 변동비로 바뀌어나갈 추세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의 자금수요를 현저히 줄여준다.
더구나 구조조정의 효과는 자금잉여에 누적,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결과 대차대조표의 계상된 자산이 손익계산서의 수익에 반영되는 비율은 점차 떨어질 전망이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수익의 7할 이상이 대차대조표에 없는 지적자산에서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기업인은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두렵다고 했다.
자금잉여를 가진 대기업들이 집합적으로 미래투자를 꺼린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경제의 투자환경에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누군가가 말하길 투자와 우리네 사랑은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기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자발적 투자를 유발하지 못한다면,그러한 경제는 미래의 생산과 결실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