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이제 명품을 수입만 할 게 아니라 만들어 수출해야할 때" 제일모직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루이자 베카리아의 수석 디자이너인 이정민씨를 상무보대우로 스카우트했다고 발표하자 세상이 떠들썩했다. 재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임원인데다 34세라는 젊은 나이 때문. 오너 가족을 제외하면 현재 대기업에서 가장 "어린 임원"이다. "제가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다니 놀랍네요.패션 업계에서는 제 나이의 매니저는 흔하고 20대 수석 디자이너가 나오기도 하는걸요." 이씨는 "삼성같은 대기업이 과감한 인사를 했다는 것 때문에 화제를 일으키는 것 같고 어깨가 좀 무겁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제일모직의 스카웃으로 화제가 됐지만 이 상무보는 이미 해외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고 있는 초특급 디자이너다. 루이자 베카리아는 유럽에서도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는 브랜드. 남편(지금은 공간 컨설팅 및 디자이너)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던 이 상무보는 수습으로 이 회사에 들어간지 3년만에 고속 승진해 디자인 팀장이 됐고 영화배우 산드라 블록,줄리엣 비노쉬,제니퍼 로페즈등이 각종 행사장에서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그는 "디자인에만 소질이 있는 게 아니라 전체 컬렉션을 경영할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들었다"며 "회사에서도 전례없이 빠른 승진이었다"고 말했다. "면접에서 루이자 베카리아에게 "저를 선택하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겁니다"라고 말했는데 지금도 베카리아가 가끔씩 그 얘기를 합니다.아마 그런 도전 의식도 한 몫을 한 것 같아요." 이 상무보는 3월까지 루이자 베카리아를 위해 "밀라노 컬렉션"을 마무리하고 4월부터 제일모직이 밀라노에 문을 여는 "삼성패션디자인센터"에서 일하게된다. 제일모직이 기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복 디자인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 "이탈리아 패션 업계에 있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이제 한국이 일본만큼이나 잘 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으면서도 패션의 위상은 너무나 낮다는 것입니다. 삼성도 휴대폰으로는 유명하지만 패션을 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죠." 이 상무보는 "한국도 이제 고부가가치 첨단 산업인 명품을 "수입만 하는 나라"가 아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며 "명품 브랜드사업이 밀라노 파리 뉴욕 런던 4개 도시에서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제일모직의 밀라노 디자인 센터 설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명품 시장에 대해서는 "맹목적인 명품 선호와 특이한 소비 형태"를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명품의 천국이라는 이탈리아에서도 명품은 가치를 알고 희소성과 고급스러움을 사랑하는 30대부터나 소장합니다.개인적인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남들이 명품을 갖고 있으니 나도 소장하자는데 의미를 둔다고 하면 그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에게 패션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다. "제게 있어서 패션이란 호기심 즐거움 이상 환상 교감 열정...뭐 이런 말들로 표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를 하지않고 프레타포르테(기성복)를 하려면 여기에 상업적인 안목이 접목 돼야만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이겠죠." 그는 "이탈리아 회사와 국내 대기업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 힘든 점이 많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삼성패션디자인센터가 하루라도 빨리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전력투구할 생각"이라고 힘줘 말했다. 궁극적으로 삼성의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것이 한국 패션의 위상을 세계 시장에서 드높이는 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