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2 '胡亂'을 막으려면..孫郁 <삼성종합기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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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세종조 때 우리는 과학기술 일류국으로서 민족 융성의 꽃을 피웠고,18세기 영·정조시대에는 실사구시의 실천으로 제2의 중흥기를 이루어냈다.
21세기는 3백년 만에 다시 맞는 우리 민족 중흥의 세번째 호기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우리는 21세기 첫 대통령을 뽑았다.
새 대통령,새 정부의 책임이 막중할 수밖에 없다.
오는 2008년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우리가 올림픽 개최를 기화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일을 되돌아본다면,5년 후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산업경쟁력을 공고히 해 전 산업분야에 걸쳐 우리나라를 위협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현재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저부가가치 범용제품,저중급 기술 위주다.
하지만 양국 경제발전 속도 차이를 감안하면 가까운 장래에 산업 경쟁력의 역전도 가능하다는 예측이 나온다.
앞으로 제2의 IMF 위기가 온다면,그것은 도약하는 중국의 산업경쟁력에 의해 촉발되는 '경제대란'으로,한국 산업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총체적 위기가 될 것이다.
따라서 대중국 정책,전략에 대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광해군(光海君:1575∼1641) 시기의 시대적 상황과 닮아 있다.
광해군이 왕으로 등극했을 때는 두 번의 왜란(倭亂)으로 국정은 피폐해지고,명나라와 청나라간의 세력 재편으로 위기감이 감돌았다.
광해군은 시대적 대세를 정확히 읽고 냉정하게 대처해 대명(對明),대청(對淸) 중립외교를 구현했다.
광해군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분명한 것은 시대를 보는 안목은 탁월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리 위주의 개혁은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의해 실패로 끝나고,이후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고 대명 사대주의를 고수한 결과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참화로 이어졌다.
역사는 순환한다.
1997년 일본 자금의 약삭빠른 회수로부터 시작된 IMF 금융위기를 '왜란'에 비유한다면,이제 닥쳐올 중국발 경쟁력 위기는 '호란(胡亂)'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대세를 읽지 못하고 대중국 정책에 실패한다면 우리는 또 한번 국치를 당할 수 있다.
새로운 대통령은 광해군의 시대적 통찰력을 가지고,경제 정치 외교 기술 국민의식 등 총체적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향후 5년은 민산관정(民産官政)이 일치단결해 개혁의 가속페달을 밟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우리가 중국의 위협을 기회로 만들어 선진한국으로 도약하는 길은 첨단기술,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중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는 것뿐이다.
그 비결은 과학기술력밖에 없다.
과학기술력 증진에 주력하는 것이 곧 시대적 요구이며,현명한 대중국 정책이며,제3의 중흥을 이루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열쇠는 과학기술강국의 선행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것은 '선진시민정신'으로,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인정하고 보상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법치가 실현되고 규범과 질서가 준수되는 공정한 사회가 될 때 기술자도 그 기술적 공헌도에 따라 올바르게 대우받고,인정받고,존경받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과학기술자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중시 풍토는 구호를 외쳐 갖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력 있는 기업이 발전하고,기술력 있는 인재가 우대받게 되면,자연히 과학기술중시 사회가 되는 것이다.
올해는 양의 해다.
양은 착함(善),올바름(美),정의로움(義)의 상징이며,종교적으로는 희생정신의 의미도 갖는다.
선진시민정신은 이같은 양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지금은 국민에게 선과 미의 정신,사회 지도층에게 의와 희생정신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우리는 본래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정신을 타고난 민족이다.
이를 되살려 선진시민사회로, 과학기술 강국으로, 선진한국으로 가자.사회 지도층부터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해 양같이 깨끗한 사회의 기반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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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