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다우지수가 27일(현지시간) 마침내 8,000선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해 10월14일 이후 1백일만이다. '이라크가 유엔의 비무장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유엔사찰단의 보고서가 '준 전시상황'인 월가를 급랭시킨 결과였다. 뉴욕증시는 이날 지난주 5.3% 하락한데 따른 기술적 반등시도가 있었지만 '전쟁위기'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달러가치도 엔화에 대해 달러당 1백17~1백18엔,유로화에 대해서는 유로당 1.08~1.09달러에서 급등락을 반복했다. 국제금값은 장중 한때 온스당 3백72달러까지 치솟았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들어 월가에서는 '전쟁시작=호재'란 시나리오 대신 '어떤 전쟁도 악재'라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발표(28일)-유엔안전보장이사회(29일)-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캠프데이비드 회담(31일)' 등을 앞두고 주가가 폭락세를 보이는 것이 이를 반영해 준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말을 인용,"이라크전쟁은 미국 기업들의 지갑을 닫게 해주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며 "이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올 미국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프랑스 등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나홀로 전쟁'의 결과가 불확실한데다 이같은 전쟁은 테러리스트들의 반격,북한 핵개발 등 전후 국제정세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중동지역의 불안정으로 인한 유가폭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월가의 유명 투자분석가 중 한명인 필 다우 RBC데인라우셔 주식전략가는 "투자자들은 이제 전쟁이 빨리 끝나는 등 월가에서 기대하는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다 해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있다"며 "전쟁은 불안한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대신 '이라크 전후 처리문제' 등을 놓고 불확실성을 더욱 크게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물론 '전쟁=호재'라는 주장이 아주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피터 카디요 글로벌파트너증권 수석전략가는 "전쟁이 시작되면 주가가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는 지금 그런 순간에 매우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전시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월가에서는 이같은 낙관론보다 '전쟁=악재'란 비관적인 시나리오가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쟁은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반전 논리가 월가에서도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뉴욕=육동인 특파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