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경제교육을] 제2부 : (2) '미국의 통합경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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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호바트초등학교 5학년 엘리 나바로(11)는 '땅부자'다.
그 비싼 베벌리힐스에 '부동산'을 세 군데나 가지고 있다.
한 곳은 본인이 사용하고 두 곳은 임대를 줘 매달 2천4백달러의 월세를 거둬들인다.
추가 수요가 있어 조만간 월세를 올려받을까 생각중이다.
진짜 베벌리힐스는 아니다.
엘리네 반에서 칠판에서 가장 가까운 앞쪽 자리가 바로 베벌리힐스다.
문에서 가까운 구석자리는 달동네격인 '스키드로'의 지명을 땄다.
학생들은 6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매겨진 '월세'를 자리 주인인 담임선생님에게 내야 한다.
지불 수단은 '달러'가 아닌, 반에서 통용되는 '호바트달러'다.
임대료의 세 배를 내면 자리를 아예 살 수도 있다.
레이프 에스키스(47)가 담임인 호바트초등학교 56A교실은 시장경제 사회의 축소판이다.
모든 학생들은 수업 첫 날 '직업'과 '앉고 싶은 자리'를 정한다.
직업도 다양하다.
은행가 관리인 청소부 영화인...
수학성적이 좋은 아이는 은행가가 될 수 있다.
담임은 매달 '월급'을 준다.
역시 직업에 따라 차이가 있다.
문제는 월급보다 자릿세가 비싸다는 것.
모자라는 부분은 '보너스 머니'로 벌충해야 한다.
성적을 많이 올리거나, 출석이 좋거나,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을 하거나 하면 '보상'을 받는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돈을 번다'라는 진리를 익힌다.
학생들은 모두 그날그날 결산보고서를 쓰게 된다.
미국 성인들의 소득세 내는 날인 12월11일에 맞춰 소득세(5백달러)를 내며 반기에 한번씩 부동산세도 내야 한다.
가끔은 빈털터리가 되는 학생도 있다.
그럴 때는 집을 빼앗기고 바닥에 앉게 된다.
경매도 중요한 교과과정.
선생님이 준비해온 장난감 등 여러 가지 진짜 물건을 호바트달러로 살 수 있다.
과정을 잘 따르는 학생들에겐 권리와 특권이 주어진다.
상급학교 진학 때 우수학생에겐 장학금을 주고 음악에 재능 있는 학생에게는 악기를 사준다.
1년에 한 번씩은 미국내 명소나 유럽으로 여행을 간다.
동부 명문대를 돌아보는 아이비리그 투어도 떠난다.
여행할 때는 좋은 호텔에 묵게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도 데려간다.
레이프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사회에 적응하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부모들이 가난합니다. 어려서부터 돈의 생리를 익히고 합리적 소비태도를 심어주자는 생각입니다. 학생들은 돈 이상의 것을 배우지요. 바로 삶입니다."
이쯤에서 재원이 궁금해졌다.
"한동안 부업을 네 개씩이나 했지요."
아이들의 전인교육에 기울이는 레이프의 노력에 제자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인 예일대 출신 변호사 매트 팔로가 94년 '호바트 셰익스피어리언'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해 레이프의 학급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오프라 윈프리, 피터 몰, 이안 매켈런 경 등 유명인사들도 재단의 든든한 서포터다.
기부의 혜택을 받은 아이들은 성장해 다시 기부에 나선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경제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실을 건전한 사회의 축소판으로 만들어 놓고 시장경제를 몸으로 배우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실에서 임대 납세 직업 경매는 물론 기부문화까지 체득한 레이프의 아이들.
통합경제교육을 지향하는 레이프의 교실은 가장 건전한 시장경제 현장인 셈이다.
로스앤젤레스=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