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한 아파트단지인 자린화위안(嘉林花園)에 최근 수백여명의 노동자들이 들이닥쳤다. 시위대는 아파트를 점거,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체불임금 때문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왕(王·43)선생은 3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함께 베이징으로 온 전형적인 민공(民工·농촌에서 온 도시 노동자).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받은 돈이라고는 정상임금의 절반에 불과한 월 3백위안(1위안=약 1백45원)이 고작이었다. 두달 전부터는 그나마 나오지 않았다. 설 명절 부모님과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고향 안후이(安徽)성으로 가야하지만 기차값도 없는 실정이다. 자린화위안뿐만이 아니다.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민공들이 많은 도시에서 설 명절을 앞두고 체불임금을 둘러싼 분규가 확산되고 있다. 중국 노동부는 전국 23개 성(省)에서 약 3억5천만위안의 임금이 체불된 것으로 밝히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공 왕씨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시간,베이징의 한 여행사에서 여행사 직원과 손님 펑(彭)씨가 입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사업가인 펑씨는 "3주 전 예약했던 하이난다오(海南島) 여행 상품을 여행사가 일방적으로 취소시켰다"고 항의했다. 예상과 달리 설 연휴 하이난다오 여행객이 쇄도하자 여행사가 기존 상품을 취소한 것이다. 대신 비슷한 여행상품 가격을 2배나 올렸다. 여행사 직원은 "현지 호텔비가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다"며 가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이었다. 펑씨는 두배나 비싼 여행상품을 사야 했다. 그래도 그는 가족과 함께 하이난다오에 갈 수 있게 됐다며 즐거워했다. 체불임금 6백위안을 받아내기 위해 추운 날씨 속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민공 왕씨.그 옆에는 3박4일 여행을 위해 지갑에서 6천위안을 선뜻 꺼내는 사업가 펑씨가 존재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한 3천만명의 부자들이 은행예금의 약 60%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국.설 명절은 그 빈부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베이징=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