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엽 < 남서울병원장 namsh@hitel.net > 얼마전 중국에서 한 학부모가 자식을 체벌한 교사를 도끼로 살해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식의 스승을 형사 고발하는 사태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져 공주병이니 왕자병이니 하며 크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자녀를 적게 혹은 아예 안 가지려는 부부가 늘어난다고 한다. 급기야 20∼30년 후에는 인구의 감소가 예상된다고 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하려니와 속칭 '귀족병'도 더욱 극성을 부리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점 없지 않다. 병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간혹 유별난 특권을 요구하는 사람 때문에 적잖이 마음 상하는 경우가 있다. 일전에 젊은 부인이 유방에 조그만 몽우리가 만져진다면서 온 적이 있었다. 진찰후 간단한 수술 및 조직검사를 권했더니 진료의뢰서만 써 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국내 최고의 유방암 권위자를 검색해 전화로 진료 예약을 했으나 진료의뢰서를 가져와야 보험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여 진료의뢰서를 떼러 왔다는 것이었다. 암으로 판명된 것도 아니고 암일 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상황에 굳이 대학병원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설득했지만 자신은 최고 권위자가 아니면 진료받을 수 없다면서 단호한 태도로 "환자가 원하는데 진료의뢰서만 떼어 주면 그만 아니냐"고 짜증을 내는 것이었다. 서로 감정 상하지 않게 써 주고 말까 생각했지만 그만한 수술정도는 필자도 얼마든지 가능했고 또 의료진료체제가 무너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못 써 준다고 거절했더니 "뭐 이런 의사가 다 있어" 라는 표정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음은 물론이고 그동안 소중히 지녀왔던 외과의사로서의 자부심마저 상처받은 듯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남을 이해할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해 왔지만 앞으로 더욱 특별한 대접만을 요구할 그들을 어찌 감당해야 할 지,속절없이 끌려가야만 하는 건지 어쨌든 씁쓸한 기분은 지울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