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지도자에게 김대중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고 그의 의견을 받아 오는 게 나의 기본 임무다."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가 지난 27일 특사 자격으로 방북하기에 앞서 대국민 인사말을 통해 밝힌 '각오'이다. 북측 지도자를 구체적으로 거명하진 않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키는 말이란 것은 누구든지 알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임 특보가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 대해 일말의 의심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임 특보의 인사말로 봐서 남북간 사전조율이 끝난 상태라는 추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갖고 올 수 있다는 기대가 컸고 방북기간중 언제 김 위원장을 만나느냐에 언론의 촉각이 곤두세워졌다. 북측이 남측 특사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북핵 사태의 '획기적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성급한 예측마저 나돌았던 터였다. 김 위원장과의 면담 여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북한 체제의 속성상 그가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4월 임 특보를 만나 경색 국면에 놓였던 남북관계를 단번에 반전시켰다. 그러나 임 특보는 이번에는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임 특보는 29일 서울 귀환후 가진 가지회견에서 그 이유에 대해 "김 위원장이 '현지지도'차 지방에 내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면담 불발에 대한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친서에 대해 (김 위원장이) 최초 반응을 보였다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애써 자위했다. 하지만 이는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북측이 특사 방문을 수락하고서도 면담하지 않은 것은 외교적으로 전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사의 방북이 예정돼 있는데 지방 일정을 잡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외교가의 반응이다. 한 외교당국자는 "현지지도가 특사를 맞는 것 보다 더 중요하냐"고 반문했다. 북측의 이같은 태도를 탓하기 전에 면담이 이뤄질 것인지 확약도 없이 방북에 나선 정부의 '성급한 자세'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