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4천억원 북한지원설에 대한 감사원의감사는 성공도 실패도 아닌 '반쪽감사'로 끝났다. 감사원은 30일 북한지원설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2천235억원은 개성공단, 남북철도, 금강산관광 등 7개 대북관련 사업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나 "실제 이 자금이 북한에 흘러들어갔는지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이 지난 28일 제출한 사용처 내역 자료를 토대로 북한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진실여부는 미지수란 얘기다. ◇대북지원 확인 =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현대상선 자금의 북한유입이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현대상선이 제출한 자료는 "2000년 6월7일 대출받은 4천억원중 1천억원은 현대건설주식회사 기업어음(CP) 매입자금으로, 765억원은 현대상선 CP 매입자금으로, 2천235억원은 대북관련 사업자금으로 각각 사용했다"고 돼 있다. 손승태 감사원 1차장은 "2천235억원은 개성공단사업비 등 7개 대북관련 사업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대측 주장대로라면 북한에 대한 지원은 `뒷거래' 성격의 의혹이 아닌 합법적인 대북사업이란 얘기다. 그러나 현대의 주장이 진실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손 차장도 "계좌추적권이 없어 북한에 흘러 들어갔는지 여부는 밝힐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현대상선은 현대와 북한간에 약정된 합의서에 따라 문제의 자금을 북한에 지원했다는 소명자료를 냈다고 설명했다. `사업약정합의서'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과 북한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간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적법성 논란= 현대의 주장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대북지원이 합법적인 기업행위로 볼 수 있느냐의 여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는다.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기업 운영자금' 명목으로 4천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이번 대북지원이 `기업운영'의 범주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손 차장은 "현대자금의 대북지원은 당초 대출목적인 운영자금의 범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손 차장은 "산업은행 대출규정에 벌칙조항이 없어 고발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대북지원 행위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셈이다. 여기에 현대와 북한이 체결한 약정서 등에 대해 감사원이 "국가기밀사항이어서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약정서 내용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데다 공개할 수 없는 국가기밀까지 있는 상황에서 약정서 체결행위에 대한 적법성 시비는 물론 약정서 체결에 대한 당국의 사전인지 여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의혹 = 북한지원설과 관련한 핵심쟁점인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개입 여부에 대해선 전혀 진위가 가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2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계좌가 사용됐는지, 또 직접 전달됐다면 누구를 통해 언제, 어떻게 전달됐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 또 이 과정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개입하거나 지원한 것은 없는 지도 규명돼야 할 의문 중 하나다.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는 "현대가 국정원의 편의제공을 받아 북한에 송금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대북지원이 현대상선이라는 일개 기업차원에서 완결된 것인지 아니면 집권세력의 사전인지, 또는 권유 등의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가 전혀 해명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북한에 지원됐다는 자금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2000년 6월7일 대출된 자금이란 점도 의심을 낳을 소지가 있다. 여기에 기업차원이든, 통치차원이든 북한에 지원된 자금이 `4천억원' 이외에도 `비밀리에 존재할 수 있다'는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전망 = 감사원이 대북지원의 주체인 현대상선 관계자들에 대한 고발조치를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향후 검찰수사도 난관에 봉착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북한에 지원된 자금이 `외환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현대의 대북지원이 기업운영의 범주에 속해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번 감사는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천억원이 북한에 지원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한광옥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출 압력을 행사했다"(2002년 10월15일, 엄낙용 전산업은행 총재)는 발언으로 파장이 확산됐으나 결국 진실규명에는 미흡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감사원이 현대측이 제출한 자료를 `기관협조' 차원에서 검찰에 넘길 수 있다고 밝힌 상황인 만큼 대북지원설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와 강도에 따라 이번 사건의 실체규명 여부가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gija00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