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경제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중.고등학생과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두 차례의 설문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났듯 많은 청소년들은 이미 경제과목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으며 교사들도 경제를 가르치는데 버거워하고 있다. 청소년들에게 살아있는 경제감각을 키워 주기 위해서는 어느 부분을 어떻게 개선해 나가야 할까. 한국경제신문은 2일 경제교육 분야 전문가들을 본사로 초청, 한국 청소년 경제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 참석자들의 한마디 ] 김성숙 < 소비자보호원 선임연구원.소비자학박사 > "토론식으로 경제수업...노하우 네트워크 필요" 김재원 < 한양대 디지털경제학부 교수.경제학박사 > "아이들 경제지식 없어...성장보다 분배에 관심" 박윤경 < 구일고등학교 교사 > "사고력 중시 경제교육...학생들 가치선택 도와" 윤은기 < IBS컨설팅컴퍼니 회장.경영학박사 > "방송.광고 부작용 심각...잘못된 정보 잡아줘야" 천규승 < KDI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팀장.경제학박사 > "입시위주 교육 걸림돌...획일적 발상 없어져야" 사회 김정호 차장(한국경제신문 '10대에게 경제교육을' 취재팀장) ----------------------------------------------------------------- 사회 =한국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중.고등학생들의 경제인식은 현실 경제와 상당히 동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역할을 '사회기여'라고 답하거나 국가경제가 잘 된다는 의미로 '완벽한 복지제도'라고 꼽는 등 '비(非)시장경제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윤은기 회장 =청소년들의 경제인식 수준이 이처럼 왜곡된 데는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근본적으로는 기성세대들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따른 후유증이 아이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액체납자가 강남에 제일 많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 기성세대들은 대뜸 '돈 있는 사람들이 더 나쁘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강남지역에 고액체납자가 많은 것은 그만큼 고액소득자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다. 부모들의 이런 태도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평등의식을 심어주고 깨끗한 돈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박윤경 교사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평가할 순 없지만 아이들의 경제인식 속에 이상한 평등의식이 잠재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력과 관계 없이 결과물을 똑같이 나눠가지려는 의식은 '비(非)시장적'이라고 봐야 한다. 냉혹한 현실을 회피하려는 마음도 이런 경향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천규승 박사 =청소년들의 경제의식이 왜곡되고 있는 것은 지금의 교육환경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봐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하지만 인터넷은 특정 소수의 편향된 글이 넘쳐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기성 세대들은 사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토론에 참여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원 교수 =학생들이 경제성장보다는 분배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은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복지제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기초생활법을 통해 1천달러대의 생활을 보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에 비춰볼 때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사회 =경제교육을 한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왜 '돈놀이'를 가르치려 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윤 회장 =기성세대들은 경제교육을 대체로 '재테크'와 동일시한다. 그나마 재테크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재테크란 돈을 벌어서 잘 관리하고 잘 쓰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는 단기간에 쉽게 버는 '비법'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이런 인식 하에서는 당연히 경제교육에 거부감을 나타낼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김 교수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아이들 앞에서는 돈 얘기를 하지 말라"고들 한다. 아이들에게도 "집안이나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가르친다. 그만큼 돈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을 마치 죄인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이래서는 아이들이 건전한 소비주체로 자라나기 힘들다. 김성숙 박사 =경제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려면 우선 교사들에게 많은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사회교육단체나 전문가 그룹이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금도 몇몇 사회단체에서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산발적인 행사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경제교육에 관련한 사회전반의 전문가 그룹을 하나로 묶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사회 =경제교과서를 포함해 현재의 경제교육 시스템 전반을 대폭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천 박사 =지금의 경제교육은 대학입시라는 걸림돌 때문에 모든 문제를 사지선다형으로 접근한다. 최근 교육방송을 보니까 경제과목 시간에 기회비용을 계산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이건 경제학 교수도 풀기 어렵다. 주관적인 개념이므로 정답이 하나일 수 없기 때문이다. 획일성을 강조하는 '빅 브라더(big brother)'식 발상부터 없애야 한다. 경제교육 개편방안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윤 회장 =경제교과서 내용은 경제가 우리 삶에서 어떤 중요성을 가지는지를 설명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그래야만 돈을 '최종 목표'가 아닌 주요한 '경제적 수단'으로 파악하게 된다. 김 교수 =경제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회과목 교사들의 전공이 대부분 지리나 역사쪽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경제과목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박사 =반드시 그런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교사들은 수업을 토론방식으로 이끌어 나갈 만한 역량이 부족하다. 경제과목의 경우 특히 토론식 수업이 필요한데 현재 교육 여건상 어려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 교과서에 큰 하자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학습자료나 교육방법이 부실해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자신의 일상 생활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지 못하는게 문제다. 박 교사 =학교에서도 경제교육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이론보다 경제적 사고력을 가르치는 쪽으로 교육목표가 변하고 있다. 또 예전에는 특정한 가치를 가르치는데 주력했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가치를 선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사회 =경제지식을 어디서 얻느냐는 질문에 30% 이상이 방송이라고 답했다. 방송이 학생들의 경제교육에 적당한 도구라고 보는가. 천 박사 =TV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사실과 달리 왜곡되거나 한쪽 방향으로 편향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되도록 아이들과 같이 TV를 보면서 대화를 통해 그때 그때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줘야 한다. TV 방송 작가들에 대한 경제교육도 필요하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양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윤 회장 =맞는 말이다. 중국산 제품이 범람해서 우리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뉴스나 프로그램이 있다고 치자. 이럴 땐 중국제품을 수입하지 않으면 국내 물가가 오르게 된다는 점과 글로벌 경제하에서는 무작정 수입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줘야 한다. TV를 통해 광범위하게 살포되는 광고도 문제다. 광고는 정보이긴 하지만 광고주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광고를 보는 눈을 기르도록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아이들이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하게 된다. 사회 =경제를 가르칠때 빠져서는 안될 부분이 '기부'에 대한 교육이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에게 더불어 사는 지혜를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윤 회장 =기부는 생애 전반에 관한 계획이 서 있어야만 가능하다. 경제교육 과정에 장기적인 인생 설계나 삶의 가치에 대한 부분이 포함돼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모가 직접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 박사 =경제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정 학교 사회단체 등 각 교육주체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이 이런 작업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