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계식 현대중공업 사장의 하루 일과는 아침 6시30분 출근으로 시작해 다음날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하루 19시간을 직장에서 산다. 잠은 4시간만 잔다. 출근시간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력서에 나와있지 않지만 그의 무쇠체력의 비결은 취미이자 특기인 달리기에서 나온다. 그의 달리기 수준은 환갑을 넘긴 사람으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중년에 접어든 남성들의 기력회복 차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1961년 9.28 서울수복 기념 마라톤대회에선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와 함께 뛰어 7위를 차지했다. 대학 1년(19세)이던 당시 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이제 "백발의 마라토너"인 그의 42.195km 완주 횟수는 이봉주 선수에 버금갈 1백회를 넘고 지난해만 해도 10여 차례 완주에 성공했다. 해외출장 현지에서 달리기는 봉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80년대 초 혁명 이후의 이란 방문 때 새벽에 호텔주변을 뛰다 체포돼 이란 석유장관까지 동원돼 가까스로 풀려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허벅지를 내놓고 달린 것이 원인이었다. 지금도 그는 매주 현대중공업의 울산 공장 방파제(70km)를 달리며 2시간50분대를 유지하고 있다. 짬을 낼 수 없을 정도로 바쁘더라도 새벽시간을 이용해 매일 10km 가량은 달린다. 이따금씩 점심시간을 이용해 고정멤버 10여명과 함께 회사 주변을 뛰기도 한다. 그래서 백발의 마라토너로 통한다.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두 분 모두 운동선수를 지낸 부모님의 영향도 컸지만 어릴 적 달리기 외에 다른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골프에는 문외한이다. 운동하는데 시간이 너무 든다는 이유에서다. 이력만 보면 그는 꼬장꼬장한,고집센 노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천만의 말씀. 푸른색 작업복 차림의 그는 평소엔 현장직원들이 거리감을 느낄까 봐 넥타이도 매지 않는다. 그는 의전이나 격식을 따지는 임원들을 싫어한다. 하지만 늘 선비처럼 단정하고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 그가 일에 파묻혀 있는 이유는 그의 이력이 말해준다. 서울대 조선공학과(61학번)를 졸업한 후 그는 미국 버클리대에서 조선공학 및 우주항공학 석사를,MIT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땄다. 국내외에서 발표한 논문도 1백20편, 웬만한 교수보다 많다. 특허도 40여건이나 획득했다. 그의 사무실은 각종 학술서적과 논문으로 빼곡히 차있다. 민 사장은 부하직원에게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집안 일처럼 해보라고 충고 정도만 한다는 것. 비서는 오후 6시만 되면 정확히 퇴근시킨다. 이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사업을 구상하거나 평소에 생각해뒀던 신제품 개발계획에 골똘한다. 대기업 임원이나 중소기업 사장이면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밤 10시까지 일하고 한달에 두번은 주말에 출근해 책을 읽으며 사업 구상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민 사장이 그렇게까지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고 일에 열중할 때 나는 행복합니다.믿어지지 않겠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달리는 이유를 물어봤을 때도 같은 대답이 나왔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