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해결로 회사의 손실을 메워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5년째 현대상선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소액투자자 A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얘기를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2천2백35억원에 달하는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에 대한 불만이 잔뜩 배어 있었다. 주당 1만원대에 매입한 주식이 2천원을 밑돌고 있다는 그에겐 대북지원의 실체나 청와대 국정원 등의 개입 의혹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문제는 현재 현대상선의 시가총액을 훨씬 넘는 돈이 주주들 몰래 북한에 건네졌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물론 현대상선의 주가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은 것은 꼭 대북송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때 현대 계열사들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면서 1조원이 넘는 돈을 지원해야 했고 해운경기 불황으로 영업실적이 저조했던 것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대북지원-재무구조 악화의 연결고리를 알지 못한 채 주가 하락으로 손실을 본 '선의의 투자자'들은 달리 하소연할 길이 없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유독 현대상선 주주들만이 '봉'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대북 현금지원이 비밀리에 진행됐기 때문에 대승적 차원에서 이들의 이해를 구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대북 현금송금과 관련된 인사들은 사법적 단죄 여부에 관계 없이 민사 차원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현대상선이 북한에 대규모 송금을 감행한 것은 사실 미묘한 남북관계와 국민적 공감대 문제,정치권의 이해득실까지 곁들여진 대단히 복잡한 사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복잡할 것도 없다. 현대에서 대북송금을 위한 자금이 빠져 나갔고 또 이 사실이 숨겨져 있었던 탓에 주가 폭락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을 발표했던 지난달 30일 현대상선 주가가 오히려 큰 폭으로 반등한 점은 기업경영에 있어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조일훈 산업부 대기업팀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