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기업관련 개혁정책들의 진퇴 여부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오는 25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현 정부, 민간과 함께 토론했던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책은 벌써부터 폐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정책들은 원안대로 추진되는 쪽으로 정리되고 있다. 인수위는 3일부터 사흘 동안 자문 교수 등 전문가들과의 '금융.재벌.재정 개혁 간담회'를 통해 기업개혁 밑그림을 마무리한 뒤 이달 중순까지 그간의 활동 사항을 종합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낸다는 계획이다. ◆ 정책 '옥석 가리기' 임채정 인수위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한국표준협회 주최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금융계열사 분리청구제 등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확립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힌 정책들에 대해서는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공약인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도 포함돼 있다. 다만, 인수위는 법 개정시 우려되는 위법성 논란 등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 내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갖고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집단소송제는 소송 남발의 우려가 있지만 한나라당 일부에서도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어 올 정기국회 통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재계가 폐지를 주장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예외 규정을 줄이는 쪽으로 오히려 강화될 조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4월 상호출자금지 대상 기업집단들의 출자 현황을 파악한 뒤 예외 규정 조정 폭을 결정키로 했다. 예외 규정을 줄여 규제는 강화하되, 출자한도(순자산의 25% 이내)를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토가 어렵다"는 강화 일변도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정책은 부작용과 실효성 때문에 폐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일반인들도 공정위와 함께 기업의 부당·불법행위에 대해 검찰에 고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은 '소송 남발'의 부작용 때문에, 이사회 강화를 위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자는 방안은 실효성이 적다는 이유로 '없던 얘기'가 돼가고 있다. ◆ 재계 반대도 변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8일 '2003년 경제환경 전망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새 정부의 경제정책이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각종 기업정책의 재고를 촉구하며 대안을 제시했다. 최근 경제상황이 어렵고 노 당선자가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 방법"을 강조한 만큼 재계의 의견이 정책에 수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컨대 논란을 빚고 있는 사외이사제 확대 문제는 비(非)전문가들이 인사청탁 등으로 자리만 차지하는 경우가 허다한 상황에서 숫자만 늘릴 경우, 오히려 기업 경쟁력을 해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많아 재고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대북한 비밀 자금지원을 둘러싼 야당과의 정쟁, 불투명한 국내외 경제환경 등도 새 정부의 '재벌 개혁 드라이브'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기업그룹 계열 금융회사의 분리청구제도나 상속.증여세의 완전 포괄과세 도입 등을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법 개정 절차가 필요한데, 정부.여당과의 관계가 급속히 냉각돼 있는 '거야(巨野)' 한나라당이 선뜻 '협조'해줄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또 미국 등 해외 경제의 여전한 불안 등으로 기업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계가 "기업의욕을 빼앗는 조치"라며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는 집단소송제도 도입 및 출자총액제한 강화 등을 당초 구상대로 조기에 밀어붙일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5일까지 계속될 인수위와 자문교수 등 간의 간담회에서 이들 문제가 어떻게 걸러질지 주목된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