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기술과 함께 살아온 유영욱 서두인칩 사장(56). 다소 수줍어하는 표정에 낮은 톤의 말투가 영락없는 기술자다. 그러나 그의 말속에는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과 경영자로서의 강한 의지가 가득차 있다. 미국 퀄컴에 맞서 국산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칩을 개발, 화제를 모았던 서두인칩의 명성도 유 사장을 보면 쉽게 짐작이 간다. 유 사장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1인자다. 그러나 스스로의 표현대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매번 새로운 변신을 꾀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동기들 대부분이 연구소나 대기업에 안주할 때 그는 자리를 박차고 뒤늦게 벤처업계로 뛰어들었다. 사실 국내 벤처업계 경영자 가운데 유 사장처럼 평생 기술자로 살아온 사람은 드물다. 유 사장의 창업정신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 시절부터 비롯됐다. 특히 KAIST 2대 원장이던 박달조 박사의 특강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고 한다. "70년대 중반 청계천 장사동은 소규모 PC조립상들이 밀집해있었는데, 국내 PC산업이 태동한 곳이죠. 박달조 박사는 당시 학생들에게 '꼭 청계천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이들 산업기술 발전의 역군들로 부터 배우고 반성하라는 뜻에서였죠." 유 사장은 그 때 산업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KAIST 졸업후 지금의 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신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 반도체기술개발센터로 들어가 반도체 개발에 매달렸다. 15년여를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유 사장은 중계기용,통신용 칩 등 각종 반도체칩 개발을 주도했다. 금성반도체의 산파역할도 했다. 특히 반도체 IC(집적회로) 설계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유 사장의 삶에 변화가 온 것은 82년 미국사무소장을 맡으면서 부터였다. "당시 실리콘밸리는 충격이었습니다.반도체칩 설계기술이나 자동화,디자인 등에서 우리와는 스케일이 다르더군요.저런 기술을 국내에도 보편화시켜야 겠다고 마음먹었지요." 유 사장은 3년간의 미국근무를 마치고 귀국해 반도체 칩 설계에 매달렸다. "국가연구소도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연구소 개혁을 부르짖기도 했다. 그러나 국가연구소의 체질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유 사장은 89년 연구소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10년 후에 뭘 하고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봤죠. 더이상 국가연구소는 의미가 없더군요. 미국서 배운 것을 산업현장에서 써먹을 때가 왔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유 사장은 밸리드로직시스템즈라는 미국회사의 한국지사장을 거쳐 92년 서두인칩을 창업했다. 지금까지 주문형반도체(ASIC) 설계기술과 무선통신 칩 등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설계전문회사로 키워냈다. 특히 지난 96년부터는 삼성전자 SK텔레콤 등과 국산 CDMA칩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첨단 IT(정보기술)분야에서는 3~4년만에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고 봅니다." 유 사장은 이같은 판단에 따라 지난 2000년 디지털미디어사업에 진출, 위성방송수신용 셋톱박스를 주요사업으로 만들었다. "반도체와 통신칩, 디지털미디어기기 등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겠습니다." 그는 "10년후에는 최소한 1, 2개 제품에서 세계 최고수준을 인정받겠다"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