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yh@ksf.or.kr "그 사람 감투쓰더니 달라졌습디다." "그 친구 돈 좀 벌더니 변했더라." 우리는 세상 살아가면서 이런 류의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사촌 땅 사는 것을 배아파'하는 한국사회임을 생각하면 말하는 사람의 시기심이나 괜한 트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위나 돈,명성이라는 세속적 명리 때문에 '본래적인 자기모습'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오랜 공직생활을 해오는 동안에 나도 그런 경우를 꽤 보아왔다. "선배님,선배님"하면서 나를 찾아오곤 하던 어느 대학의 H 교수. 매스컴을 자주 타고 정권 실세를 찾아다니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모 부처 장관으로 입각했다. 나로서는 진심으로 기뻐해주고 축하할 일이었다. 그러고서 얼마 후 어느 회의장에서 만난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그 순수했던 체취와 인간적인 미소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눈과 입가엔 위엄으로 가득찬 '고관대작'이 되어 버렸다. 훗날 내가 근무했던 부처에서도 그런 장관을 몇 분 만났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변해간다. '미운 일곱살'에 이가 빠지면서 외양이 변하고,사춘기엔 여드름과 더불어 감성이 변한다. 청·장년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이성과 감성이 병존된 '본래적인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바람직한 본래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계속 발전시키면서 성숙돼 가는 플러스형이 있고,본래적인 자기 모습을 정립하지도 못하고 지체하거나 세속의 풍진에 물들면서 후퇴해가는 마이너스형도 있다. 그 중에서도 H 교수 같은 급진형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20대의 한때 철학도였던 나는 니체,사르트르,하이데커 같은 실존주의 사상가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실존'이란 것은 본래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모습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한 '실존'을 제대로 정립하고 플러스형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인생의 정도이리라. 얼마 안있어 신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새로운 장관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아무쪼록 대통령 당선자께서 스스로 약속하고 있는 것과 같이 '처음과 끝이 같은',그래서 본래적인 자아를 잃지 않는 그런 장관들이 많이 나와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