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동북아 중심국 조건..李榮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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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전 세계의 발전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이 성취한 경제성장을 '기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곧바로 '동아시아의 기적은 결코 기적이 아니며,동아시아 경제는 붕괴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은 생산기술의 발전없이,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을 증대시켜 양적 성장만 이루어 낸 결과라고 치부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아시아 경제성장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누구나 할 수 있는 양적 투입으로 양적 생산을 이룬 것에 불과하므로,투여할 수 있는 생산요소의 양이 한계에 달하면 성장은 더 이상 자생적으로 지속되지 못할 뿐 아니라,소련경제와 같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었다.
크루그먼의 예언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아시아 경제는 외환위기에 휩싸였다.
만일 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동아시아 경제의 기적은 한갓 신기루가 돼버렸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 경제는 붕괴 국면을 모면하면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이제 다시 동북아 중심국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동북아의 중심국이 되는 또 다른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지난날 우리의 경제성장이 사상누각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새로운 경제성장이론은 선진기술의 학습과 혁신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자생적인 성장이 가능함을 말해준다.
그러기에 최근 세계은행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경제도약을 추진하려는 프로젝트의 이름을 '혁신적 동아시아(Innovative East Asia)'라고 명명하지 않았는가.
다행히도 최근의 몇몇 연구는 우리경제가 동남아국가들과는 달리 단순히 해외직접투자와 국내노동력을 결합해 생산품을 내놓는 대용경제(ersatz economy)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한국경제는 투여되는 생산요소량의 증가율을 앞서는 생산량의 증가율을 보여주었다.
이는 바로 생산기술의 혁신과 규모의 경제성을 일구어 냈음을 의미하며,우리 경제가 자생적으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우리 경제가 이같이 자생력을 갖게 된 것은 과거의 경제정책 또는 산업정책에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그 정책들이 일면 기업들의 혁신을 가능케 함과 동시에 외환위기를 맞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제 우리가 새로이 동북아 중심국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경제를 외환위기로 몰아넣은 요인들을 제거하는 구조조정을 계속함과 동시에 기업들로 하여금 혁신을 일구어 내게 하는 정책들을 입안해 내야 하지 않을까?
동북아 중심국은 새 정부의 새로운 비전이다.
그러나 기적은 비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너무 성급한 우려일지는 모르나,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새 정부의 정책들은 우리 사회에 혁신의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공기업을 민영화하지 않겠으며,정부기구를 축소하지 않겠으며,공무원의 수도 감축하지 않겠으며,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책정하겠다는 등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방향만 제시되고 있다.
동북아 중심국 건설을 위해 제시된 적극적인 정책은 수도권 일부에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것인 데,선진시장경제를 운영하는 나라치고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경제에서 쓰는 경제특구를 운영하는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
온 국가 전 지역에 경제특구와 같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체제를 운영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경제특구에 외국기업보다는 국내기업을 유치하며,경제특구의 유치 대상에서 동북아의 중심역할을 위해 필요한 물류와 금융 등 서비스산업은 제외하려는 분위기다.
혁신을 어디에서 무슨 힘으로 이루자는 것인가? 정부가 공정한 경쟁분위기를 조성해 국내외 기업들이 자유로이 경쟁할 수 있게 할 때 혁신이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은 동북아 중심국 건설이라는 또 다른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이를 말해 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 그 기적의 실현 여부는 혁신을 유도할 수 있는 새 정부의 정책에 달려 있음을 지적해 둔다.
yslee@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