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잘못했다고 아무 죄 없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그같은 짓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5일 도쿄 외곽에 자리잡은 조총련계 조선중·고교 사무실.주일 한국특파원들에게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 학교의 구대석 교장(56)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북한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나빠지고,비판적인 보도가 잇따를 때마다 학생들에 대한 폭행 폭언 등 가해 행위가 부쩍 늘어났지만 최근의 사태는 정도를 넘어섰습니다. 학생들은 물론 부모들까지 공포와 불안에 시달려 등·하교를 제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구 교장은 지난 1월 29일 고교 1학년 여학생이 등교길 전차에서 치마를 칼로 찢기는 피해를 당한 것을 예로 든 후 "일본사회는 비인간적 집단보복행위를 당장 중지하라"고 촉구했다. 학교측 발표에 따르면 북한이 일본인 납치사건의 책임을 인정한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일본 전역에서 조총련계 학생과 학교를 대상으로 저질러진 가해 사례는 모두 3백19건.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하는 협박전화가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지만,여학생을 갑자기 전차에서 밀어내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학생을 잡아 쓰러뜨리는 등 의도적 폭력행위도 상당수다. "피해 사실을 밝힐수록 피해가 더 커져 그냥 묻어 두려 했지만 이번만은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묵인하고 넘어간다면 이같은 사태는 다시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학생들에 대한 보복행위는 일본정부의 불충분한 대응과 과잉·편향보도로 치달은 일부 언론,그리고 정치권이 합작으로 빚어낸 결과라고 비판한 후 일본당국은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서두르라고 강조했다. "일본 땅에서 조선학교를 다니는 여학생들도 따지고 보면 일제 식민지배의 피해자들입니다. 학생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에서 살게 된 것이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는 과거에 눈을 감는 일본은 미래 지향을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7일 고이즈미 총리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요망서를 전달할 계획이라는 그의 말을 뒤로 하고 학교 문을 나서는 기자의 머릿속을 '북한 때리기'라는 단어가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