裵洵勳 <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초빙교수 >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IT(정보통신기술) 선진국이다. 그래서 웜 바이러스의 공격에도 큰 피해 없이 정보고속도로를 단시간에 재개통할 수 있었다. 일본신문들은 세계 정보통신망의 장애를 보도하면서 한국의 피해가 가장 컸다고 대서특필했다. 우리가 선진국이니 당연히 제일 먼저 피해를 보게 돼 있고,그 피해 규모도 가장 크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해서 우리에게만 발생한 문제는 아니다. IT 선진국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인 셈이다. 우리가 문제를 잘 해결하면 성공 사례가 돼 세계 모든 나라가 배우려 할 것이다. 전화의 경우,외국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상용화된 기술을 도입하면서 우리는 공급자와 소비자 역할을 분명히 하는 소비자 약관을 만들었고,사용규칙을 준수하도록 규제조치를 하고 있다. 반면 고속인터넷의 경우,선진국들보다 먼저 우리나라에 확산돼 초기의 시행착오를 거칠 겨를이 없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정보고속도로를 주창한 이래 세계 각국은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을 위한 투자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미국 통신회사들은 채산성 때문에 실질적 투자를 하지 않았다. 미국 소비자들도 그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는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운 대통령이 선출돼 통신규제를 대폭 완화했고,기업은 모험정신을 발휘해 채산성이 보이지 않았던 ADSL(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초고속인터넷망) 서비스를 시작했는데,소비자들의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IT 강국이 됐다. 세계 처음으로 실질적인 IT 혁명을 일으킨 셈이다. 우리는 온라인의 힘으로 월드컵축구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새로운 대통령도 선출했다.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조화시키는 체제를 하루빨리 만들어야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온라인에도 치안이 필요하고 교통규칙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도 디지털경제가 있고,디지털무역이 있고,디지털안보가 있고,국방이 있다. 디지털사회복지도 있다.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서 IT 혁명은 시작되지만,여기에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세워야 진정한 정보선진국이 된다. 교통 운송기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산업화 하지 못한 사례는 많이 있다. '국민이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국민이 알아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 국민이 알아서 협력하려면 정보망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고,국민 각자가 하려는 일을 조화롭게 조정하려면 정부가 필요하다. 행정구조를 개혁할 때 오프라인은 축소하더라도 온라인 조직을 새로이 구축하고,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조화를 이루게 해야 한다. 교육 개혁은 '정부 역할이 작아도 된다'고 한다면,새로 시작하는 온라인 교육행정(온라인 교육이 아니라)은 국민들이 잘 이해하는 관행이 만들어질 때까지 정부가 주도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설정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이 아무 일 안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요구하는 대로 업무혁신이 이루어져 일이 경감된다 해도,온라인 행정에는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초기에는 온라인 부총리와 오프라인 부총리가 일을 절반씩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수평적분업시대에는 2030세대와 5060세대가 협력할 일이지,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서로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온라인만으로는 안된다는 사례는 이미 전자책방에서 보았다. 초고속망이 가끔씩 두절되는 현상은 '정보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해킹을 방지하고 해커 다루는 일을 하는 전자경찰,안전하고 수익성이 높은 전자은행,WTO(세계무역기구) 협의사항을 준수하는 경쟁력 있는 전자무역,온라인 국가안보를 담당해야 할 전자국군,디지털 격차를 축소하는 정보후생정책 등등이 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일이다. 지난 1월25일 토요일 오후에 발생한 MS-SQL(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 서버) 웜 바이러스 사건은 더 큰 사고를 방지하도록 우리에게 미리 경고해 주는 신의 은총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회복하는데 5년이 걸렸다. 투자해 놓고 활용 못하는 초고속망은 우리를 10년 이상 후퇴시킬 수 있다. soonhoonbae@kgsm.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