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우려먹는 '비상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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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와 내수위축 등을 걱정하고 있지만 작년말에 다 예상했던 것입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재정경제부 K과장)
미·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최근 소비·투자심리가 급속히 위축되고 물가 앙등현상이 빚어지는 등 경제가 전반적인 이상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수석 경제부처인 재경부측의 대답은 '명쾌'하고도 한가롭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안'이라는 식이다.
최근 내수나 물가·수출·투자 동향이 모두 5%대 경제성장률 목표치 범위안에 있다는 분석이다.
미·이라크 전쟁 발발시 대응책에 대해서도 "우리가 이런 일 한두번 당해봅니까.
다 옛날에 짜놓은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이 있잖습니까"(재경부 K차관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지난 91년 걸프전,2001년 '9·11 테러' 당시에 작성했던 비상대책들은 '효능'이 입증됐기 때문에 국민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고, 수출기업을 지원하고, 해외교민 안전을 도모하는 데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이번에도 비상대책은 크게 바뀐 게 없다.
경제계에서는 "지난 4일 경제장관 간담회때 정부측이 자료로 낸 보고서는 제목 표지를 '걸프전 대응방안'에서 '미·이라크전 대응방안'으로 바꾸고 최근 경제동향의 숫자만 고치는 정도였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반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불안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늘 '문제없다'는 식이지만 외환위기가 몰아닥쳤고,환란을 극복했다지만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서울 암사동 주부 K씨·34)는 지적이다.
재경부 관계자들조차 "전쟁이 장기화됐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는 그때 가서 봐야 한다. 장기전을 전제로 경제운용 방향을 짠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구나 재정이나 금리,세제 등 정부의 경기부양 수단중 온전하게 써먹을 만한 게 없는 상황이다.
정권교체기에다 불투명한 전쟁 양상,세계적인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하락 현상) 우려 등 불안요인들이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관료들이 그 어느때보다 신중하게 대처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