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옥 문학의 미덕은 가난과 소외의 문제를 정면에서 응시하며 다루는 당당함에 있다. 상처받는 영혼들에 대한 따스한 보살핌과 애정이 그의 작품 속에 면면히 흐른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수수밭으로 오세요' 등을 통해 가족문제와 여성 삶의 정체성을 특유의 감수성과 활기넘치는 문체로 표현해 온 공선옥이 네번째 장편소설 '붉은 포대기'(삼신각,9천원)를 펴냈다. 이 소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작품 속의 가족은 오순도순 화목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황인혜의 가족들은 툭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때로는 서로를 무시하면서 지내기도 하는 약간은 별스런 존재들이다. 권위만 앞세운 채 가족일은 나몰라라 하며 바깥으로만 나도는 가장 황희조,배다른 자식까지 내 배로 낳은 자식 못지않게 키웠지만 말년에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안주인 박영매,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지체장애로 성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인혜의 동생 수혜,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차별대우에 자꾸만 비뚤어지다 이혼 위기까지 치닫는 인혜의 오빠 태준 등. 그 가족의 이야기는 재미날 것 하나 없는 고단한 일상사 그 자체다. 결코 매끄럽지 못한 가족간 관계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또 잃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붉은 포대기'는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실패한 사랑의 경험을 안고 있는 인혜는 장애인이면서 미혼인 동생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사랑을 차단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장애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다름아니다. 철저한 사랑불신론자였던 인혜는 그러나 가족들의 보호를 앞세운 '폭력'으로부터 수혜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울면서 사랑에 대해 그동안 쌓아왔던 불신의 탑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다. 김재창 기자 char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