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브스'지가 1917년 선정한 미국의 1백대 기업 중 1987년의 1백대 기업 명단에 포함된 것은 18개에 불과했다. 또한 이들 기업의 수익은 시장 전체의 수익률보다 20%나 낮은 수준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1백대 기업 중 61개는 이미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왜 이렇게 장기적으로 생존하는 기업이 드물까. 또 시장의 성장률보다 높은 성과를 거두는 기업이 없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창조적 파괴'(리처드 포스터 외 지음,정성묵 옮김,21세기북스,1만8천원)는 맥킨지가 미국의 1천여개 기업이 지난 40년간 거둔 성과를 분석해 장수기업의 비밀을 밝혀낸 책이다. "시장의 속도와 규모로 변화하라." 저자들은 장수기업들의 생존비법을 이렇게 분석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시장과 기업의 차이에 있다. 자본시장은 언제나 새로운 기업의 탄생을 촉진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을 지원하지만 약한 기업은 가차없이 퇴출시키면서 전체의 수익성을 향상시킨다. 슘페터는 이런 창조와 제거의 과정을 '창조적 파괴의 폭풍'이라고 했다. 이에 비해 기업은 시장진입의 단계를 지나 안정화되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세운 통제시스템과 문화적 폐쇄성으로 인해 도전정신과 혁신능력,다양한 의견의 표출을 가로막게 된다. 그 결과 시장의 속도와 규모를 따라잡지 못하게 되고 언제나 시장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창조적 파괴의 속도를 시장의 변화속도에 맞출 수 있을까. 과감한 변화보다 안정적인 운영에 초점을 맞추려는 기업 특유의 '연속성' 개념을 버려야 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대신 효율이 떨어지는 약한 기업은 주저없이 쫓아버리는 시장의 본질적 특성,즉 불연속성을 도입하라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기업 자체의 통제시스템 대신 시장의 통제를 따르는 것이다. 시장의 발전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창조와 파괴 기술을 개선해야 하며 불연속성을 바탕으로 기업조직을 상부에서 하부까지 철저히 재구성해야 한다고 저자들은 충고한다. 기업의 핵심적인 경영철학에서부터 운영시스템,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창출하기 위해서다. 지분투자회사나 벤처캐피털 같은 프라이빗에쿼티 회사들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 회사는 특정 기업을 장기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4∼7년 동안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한 뒤 새로운 가치를 찾아 투자한다는 것. 이런 방식의 '창조적 파괴'로 이들은 지난 20∼30년간 꾸준히 높은 성과를 거둬왔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아울러 수렴적 사고보다 확산적 사고를 추구해야 하며 꼭 필요한 것,필요한 때가 아니면 통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기업의 비전도 변화해야 하며 창조와 파괴의 균형을 잡고 이를 이끄는 경영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감수한 맥킨지 서울사무소 도미니크 바튼 대표는 "한국 대기업의 상당수가 문화적 폐쇄성이라는 함정에 빠져 다음 단계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창조를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제환경에 불어닥칠지 모르는 '파괴의 폭풍'을 슬기롭게 극복하는데 유용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