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무실엔 언제나 라이브 음악이 흐른다. 어른 키보다 큰 대형 금고엔 돈다발보다 값나가는 것들로 채워졌고,캐비닛엔 세계 각국에서 모은 진귀한 보물들이 가득하다. 작은 나사 하나로 국내외 시장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어 '나사 대통령'이란 별명을 얻은 임정환 명화금속 사장(67)의 사무실 풍경이다. 벽을 통해 서라운드 시스템처럼 들려오는 기계소리가 그에게는 오케스트라 선율이라고 한다. 이 소리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에 심장 박동소리이기도 하다. 사장만이 열 수 있는 금고를 들여다봤더니 각종 개발 아이디어를 기록해둔 수십권의 노트와 특허관련 서류뭉치가 가득하다. 지난 수십년간 세계 각국을 찾아다니며 모은 나사 관련 부품들도 캐비닛에서 쏟아져 나왔다. 꾸밈없이 간소한 사무실은 그에게 보물창고나 마찬가지다. 시화공단에 자리잡은 명화금속을 찾아간 기자에게 임 사장은 먼저 공장을 둘러볼 것을 권했다. 대화를 위한 기초지식부터 쌓아보자는 뜻이다. 독일이나 일본 같은 기술 열강들을 앞서가는 비밀이 뭔지 궁금해 지체없이 따라나섰다. 사장실을 나서 공장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실내 체육관같은 공간을 가득 채운 자동화 기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80년대,90년대,2000년대식 설비가 사열받듯 3열 횡대로 서 있다. 박자와 장단을 맞추며 착착 이가 맞물려 돌아가는 생산설비는 둘둘 말린 철사를 삼키면서 다양한 모양의 나사를 뱉어낸다. 이중 최첨단인 2000년대식 기계는 1분에 5백∼7백여개의 나사를 만들어내는 주력부대. 대만(분당 1백80개)과 일본(분당 2백개)등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생산능력이다. 명화금속만이 보유하고 있는 양방향 제작시스템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계들을 모두 임 사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기계만 만들어 팔아도 큰 돈 벌 수 있을 거야"라며 지나가는 말을 하는 그에게 "그럼 기계 장사를 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기계를 내다 팔면 나사 시장이 교란돼 명화금속이나 한국의 나사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며 "나사 사업에 집중하는 게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나사 제작공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좀더 강한 놈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열처리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 철판을 종이장 뚫듯 파고들 수 있다. 마지막 관문은 녹 방지 코팅작업. 명화금속의 특허기술중 하나인 '델타코팅'은 나사가 악조건에 노출돼도 1천시간 이상 녹슬지 않게 한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아연도금 나사가 20여시간 버티는데 비하면 혁신적인 기술이다. 이렇게 생산되는 나사는 매일 1천t에 육박한다. 생산규모로 세계 1,2위를 다툰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