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비스바덴의 '슐체 델리츠 슐레(Schulze Delitzsch Schule)'. 지난해 개교 1백주년을 맞은 3년제의 이 직업학교(Beruf Schule)는 비스바덴은 물론 헤센주에서도 경제교육 프로그램이 가장 잘 갖춰진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헬무트 폰 샤이트 교장은 기자를 주차장 한쪽에 마련된 '프로 바이오'라는 상점부터 안내했다. "인터넷으로 유기농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입니다. 사업 아이디어부터 법인 설립, 제품 구매 및 판매까지 모두 학생들이 담당했지요." '프로 바이오'의 사장은 아니카(18.2학년). 세금 신고를 위한 서류뭉치와 씨름하고 있던 아니카는 "독일 경제가 몇 년째 불황에 시달리고 있어 매출이 생각보다 크게 늘지 않아 고민"이라고 말한다. "방법을 모색해야지요. 취급 품목수를 늘리고 유통 단계도 줄여볼 생각입니다." 이 학교에는 '프로 바이오' 외에도 '글로벌 네트'라는 이름의 인터넷 카페 등 10여가지 사업이 학생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 경제교육의 핵심, '듀얼 시스템' '슐체 델리츠 슐레'는 인문계학교인 김나지움과 달리 '실전 경제교육'에 특화된 직업학교. 이런 직업학교는 전국 각 도시마다 5~10개 가량씩 운영되고 있다. 왜 이렇게 직업학교를 찾는 학생들이 많을까. 비스바덴시 교육청장인 한스 벤더씨는 '듀얼 시스템(Duel System)'이라는 말로 독일 경제교육의 특징을 설명했다. "독일 교과과정에는 경제라는 과목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정규 교과과정과는 분리된 별개의 경제교육 과정을 통해 경제를 교육하고 있어요. 직업학교도 이런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이같은 듀얼 시스템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구별되는 독일만의 특징이지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김나지움에도 이 시스템이 적용된다. '프락티쿰(Praktikum)'이라고 불리는 과정이 대표적인 프로그램. 학기중 3주 동안 관심있는 분야의 직업세계를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는 이 프로그램은 김나지움 9학년 학생이라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정이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독일 학교들이 도입하고 있는 '정보학' 과목의 수업방식도 듀얼 시스템을 따른다. 학교에서 3시간의 이론 수업을 받은 뒤에는 같은 시간만큼 방과후에 실전 교육을 받는다. 모든 경제교육이 '듀얼(이중)' 방식, 즉 두 개의 축으로 운영되는 셈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기업의 요구 독일의 경제교육이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독일 기업들은 여전히 불만이다. 학교 경제교육이 아직 미국 등 경쟁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베를린 지역 코흐 김나지움의 클라우스 디터 슈타인 교사는 독일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이 경제교육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독일에서는 모든 경제지식을 정치와 연관시켜 설명합니다. 그래서 경제적 발전보다는 사회안정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게 사실이죠. 독일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학생들은 좀 더 현실적인 지식을 원하고 있지만 학교 시스템이 이를 완벽하게 뒷받침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교육을 강화하라는 기업의 요구는 지난해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비교조사(PISA)' 결과가 발표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세계 31개국을 대상으로 한 OECD의 조사에서 독일이 20위권으로 밀려나자 기업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경제교육보다 기초교육이 중요하다고 떠들더니 그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였죠."(베를린 다윈 김나지움의 칼 호프만 교사)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독일의 경제교육 지난해를 기점으로 독일의 경제교육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우선 정부가 경제교육 활성화를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난해말에는 독일 연방정부가 경제계 인사들을 불러 청소년 경제교육과 관련한 컨퍼런스를 열었다. 보수적인 독일에선 생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 자리에서 연방정부와 재계는 청소년 경제의식 수준을 높이는데 힘을 모으기로 합의하고 별도의 재정지원 결의안까지 채택했다. 기업의 움직임은 더욱 적극적이다. 비스바덴시 교육청의 경제교육담당 공무원인 필립 하우씨는 "독일 기업들은 청소년들의 경제교육이 개선되지 않으면 독일의 미래는 없다는 얘기까지 한다"며 "독일의 최대 미디어그룹인 베텔스만(Betelsman)같은 기업은 자체적으로 독일 경제교육 개선안을 마련해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까지 시키고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베를린.비스바덴=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